한국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공간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 같은 글귀를 붙이며 복을 기원했고, 집 기둥에는 벽사(辟邪)의 부적을 붙여 악귀를 물리치려 했다. 절집 앞에 세워진 사천왕상은 경내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고, 조선 한양의 궁궐 정문 앞에는 해태상이 자리해 화마와 재앙을 막는다고 여겨졌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신앙이나 미신 차원의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가장 보편적인 소망, 곧 안전하게 살고 싶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싶으며, 자손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동아시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의 헤센(Hessen) 지방에서도 집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 소망을 담아내는 공간이었다. 한국인이 문 앞에 부적을 붙였듯, 헤센 사람들은 목조 가옥의 외벽에 꽃, 덩굴, 별, 태양, 글귀 등을 새겨 넣으며 그들의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헤센의 반목조 가옥(Fachwerkhaus)은 독일 전체에 퍼져 있는 전통 건축 양식 속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일 전역에서 반목조 건축은 중세부터 널리 사용되었지만, 헤센은 유난히 장식성이 강하고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목재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구조는 기본적으로 동일했으나, 헤센에서는 단순한 구조적 기능을 넘어 집주인의 삶과 가치관, 소망을 표현하는 ‘무대’가 되었다. 다른 지역의 반목조 가옥이 실용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중시했다면, 헤센의 집들은 기하학 문양, 덩굴 장식, 동물상, 심지어 짧은 글귀로 외벽을 화려하게 채워 넣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알슬펠트(Alsfeld)를 들 수 있다. 알슬펠트는 중세 시기의 도시 구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의 목조 가옥들은 단순히 흑백의 대비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붉은색·파란색·초록색 등 다양한 색채가 가미되어 외벽이 하나의 그림처럼 꾸며졌다. 상인들이 살았던 집에는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포도덩굴 문양이, 장인들의 집에는 도구나 작업과 관련된 상징이 들어가기도 했다. 알슬펠트의 집들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기원과 상징의 집합소’와 같았다.

또 다른 사례는 미헬슈타트(Michelstadt)의 시청사(Rathaus)다. 148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목재 골조가 정교하게 짜여 있고, 각 부재마다 기하학적 문양과 채색이 더해져 있다. 당시 사람들은 공공 건물조차 단순한 행정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여겼다. 지금도 이 건물은 중세의 장인 정신과 공동체적 소망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드슈타인(Idstein)의 킬링거하우스(Killingerhaus)는 1615년에 세워진 대표적 주택 건축물이다. 이 집은 외벽 전체가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데, 기둥에는 포도덩굴과 꽃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고, 상부에는 신화적 동물과 상징 문양이 어우러져 있다. 집 외벽에는 라틴어 문구가 남아 있는데, 단순한 소유자의 이름을 넘어서 가족과 후손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글자와 문양, 색채가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기도문’이 건물에 새겨진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장식의 기원은 농경 사회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었다. 포도덩굴과 곡식 이삭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별, 태양, 달 같은 천체 문양은 초자연적 보호를 상징했다. 나무와 덩굴 문양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기에 새겨진 글귀들은 종교적 색채를 띠기도 했으나, 그 본질은 집과 가족의 무사함을 바라는 간절한 기원에 있었다.
다른 독일 지역과 비교해 보면, 헤센의 독창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이에른(Bayern) 지역의 주택은 석조 건축이 중심이어서 목조 장식이 단순했고, 하르츠(Harz) 지방은 험준한 산지의 특성상 구조적 안정성을 우선시하여 외벽 장식은 상대적으로 소박했다. 반면 헤센은 풍요로운 농업 지대이자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사람들은 외벽 장식에 더욱 많은 의미와 자원을 투자할 수 있었다. 이곳의 반목조 가옥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가족의 소망과 공동체의 바람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 건축’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헤센의 반목조 가옥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관광지로 방문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순히 미적인 장식물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지켜주는 보증이자 희망의 매개체였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부적을 붙이고, 절 앞에 수호상을 세우며, 대문에 좋은 글귀를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시대와 장소, 문화적 맥락은 달랐지만, 인간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소망은 어디든 동일한 것 같다. 그렇게 헤센의 집 외벽에 새겨진 꽃과 별, 문양과 글귀들은 지금도 묵묵히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목재와 채색의 흔적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그 집을 지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읊조리는 마음의 소망, 기도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무사하기를, 우리 삶이 평화롭기를, 우리의 마을이 풍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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