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나는 미국 위스콘신의 한 대형 캠프장에서 3개월 간 캠프 지도자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동, 청소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캐빈부터 가족들이나 어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호텔식 리조트 건물은 언제나 깨끗하게 관리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일꾼들 한 명 한 명은 모두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다. 모든 것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거대한 자연 그 자체였다.
아침과 저녁, 나는 그 자연을 통해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여러 느낌과 인상을 받았으며,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중에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미국에서 캠프라고 하면 대부분 여름 캠프를 생각한다. 겨울엔 일반적으로 캠프를 진행하지 않는 곳이 많다. 캠프를 하기에 좋은 자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겨울 캠프 진행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리트릿도 진행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위스콘신이 원체 많은 눈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스키나 아이스하키, 눈길 산책, 겨울 스포츠 등 겨울에도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자연적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많은 지역이다보니, 스텝들은 일기예보에 항상 귀를 기울인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이틀간 눈폭풍이 예상됩니다."라는 예보가 뜨면, 모두 다음날 새벽부터 조를 나누어 제설작업에 돌입한다. 이 작업은 캠프장 총디렉터도 같이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큰 작업이다.
처음 '눈 폭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에서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긴장했었다. 거대한 함박눈이 쉴 새 없이 내리나보다 혼자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 여러 겹 옷을 껴입고 단단히 무장을 한 다음 숙소 문을 열었다. 그런데 눈 앞의 현실은 생각보다 잠잠한 편이었다. 얇은 눈이 계속 흩날리고 있었다. 내 기대를 완전히 빗나간 조금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때 깨달았다. '아, 이것이 정말 눈폭풍이구나.'
아닌 게 아니라 바닥에는 눈이 꽤 쌓여있었다. 이미 여러 번 제설작업을 했던 도로는 빗자루를 가지고 쓸어도 쉽게 제설이 가능했지만, 미처 치우지 못해 눈이 켜켜이 쌓여 제법 높아진 두덩들은 금세 얼음처럼 되어 삽으로 뜨기도 힘들어졌다. 그런 곳은 제설차량으로 작업해야만 했다. 만약 내일까지 이렇게 눈이 계속 내린다고 생각하면 제설차량이 아니라 어떤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쉽게 치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래서 '눈폭풍'인 것이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캠프 디렉터가 직접 새벽부터 제설 작업을 지시했던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모든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세상에 가득했던 고유한 색깔들은 모두 사라지고, 온통 하얀 빛 뿐이었다.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이었다. 옅은 눈은 나무에, 도로에 닿으면 스르륵 녹아버린다. 처음부터 눈은 세상의 고유한 색을 삼킬 수가 없다.
그러다가 땅도 세상도 조금씩 차가워진다. 얼음처럼 차가워지면 눈이 쌓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에도 온통 하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땅의 짙은 황색이 보이고, 나뭇가지의 고동색이 보인다. 부른 잎사귀도 여전히 구별할 수 있다. 이런 때에는 빗자루로 몇 번 쓸어내면 훌훌 그 자취가 드러난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눈을 치울 수가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방심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새 치울 수 있다고 믿고, 그 눈을 내버려 두면 입장이 바뀐다. 점차 흰 빛이 푸르고 짙은 세상의 색을 이기기 시작한다. 그때는 비질로는 눈을 치울 수 없다. 그 아래 눈은 이미 녹아 얼음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비질을 하더라도 겉만 핥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사람이 그 눈을 치울 수는 있다.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삽을 사용해서 얼음을 깨고 그 눈을 퍼 나르면 된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완전히 지나도록 미처 신경쓰지 못한 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 그때에는 사람도, 기계도,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세상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이미 세상은 흰 빛 이외에 다른 빛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득 머릿 속에 '우리가 짓는 죄도 어쩌면 이와 같겠구나'하는 생각이 일었다.
(물론 무엇을 죄라고 이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겠으나, 그에 까지 접목하면 너무 많은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히게 될 것이므로 이곳에선 하지 않겠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이 일 터였다. 신앙 또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죄라 명명할 만한) 아주 작은 일탈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자신의 일탈인지, 잘못인지 그 당사자, 개인은 명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로 돌아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죄는 쉽게 뉘우치고 돌이킬 수 있다. 소위 '회개'가 가능하다. 마치 비질로 눈을 쓰는 것 마냥.
그러나 가볍다고 해서, 얕다고 해서 그런 죄는 그냥 두면 땅이 얼고 눈이 쌓인 듯 한 겹, 한 겹 죄가 본성을 덮기 시작한다. 별 것 아닌 눈들로 세상이 하얗게 덮이듯,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죄들이 쌓이면 그 실체를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이 죄를 돌이켜야 할지 도무지 알기 어려워진다. 그런 죄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아니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치 어떤 중장비로도 그 눈을 없애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어찌 그 눈을 없앨 수 있을까? 어찌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것은 봄이 오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봄이 오면 도무지 치울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눈들이 녹아 없어져버린다.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지만 세상은 다시 제 빛을 찾는다. 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 내 마음 속에 뜨거운 예수의 보혈이 있다면 죄는 녹아져 없어질 것이다.
우리 마음에 항상 예수의 보혈이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작은 눈이라고, 작은 추위라고 무시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다시 땅이 얼고 그 자리에 눈이 한 겹, 한 겹 쌓이게 될 것이다. 마치 비질을 하는 것처럼, 매 순간, 그때 그때마다 죄를 돌이키고 십자가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나의 이 봄을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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