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약 3일이 지났다.
(상식적으로 일말의 타당성도 찾을 수 없겠지만, 적오도) 러시아, 아니 푸틴 스스로가 생각할 때 여러가지 그럴싸한 전쟁의 필요성을 옹호할 이유를 만들어냈다고 한들, 실상 자기 이익을 위한 정복전쟁에 지나지 않는다.
2.
한 치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익히들어왔으나, 이렇게 일순간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외교적,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전쟁이 나리라고 믿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순간 전쟁은 터졌고,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일상의 터전이던 땅이, 오늘은 내게 죽음이 찾아 온다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절망적 땅이 되어버렸다.
3.
어디 우크라이나 뿐이랴, 짧은 과거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군부독재가 그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며, 알게 모르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국지적 전쟁들이 그러하다. 어쩌면, 지속되는 통증에 감각이 둔해져버린, 세상의 여러 아픔들 속에 우크라이나의 아픔이 더해진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크라 침공] 독일·네덜란드, 우크라에 무기 지원(종합2보)
독일, 대전차무기 1천정·스팅어 미사일 500기 © 제공: 연합뉴스 휴대용 로켓 발사기(RPG)를 드는 우크라이나군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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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 슬픔과 충격이 깊이 전해지는 까닭은 내가 현재 있는 곳이 독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폴란드까지 차로 6시간, 폴란드를 넘어 우크라이나까지 다시 6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EU-NATO 같은 원론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 개별 국가로서 독일은 이미 그 갈등 속으로 성큼 들어서 있다. 독일에게 이 문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을 게임 방송하듯 생방송”···MBC, 유튜브 생중계 논란
MBC가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러시아군이 침공해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폐쇄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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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본시 타인의 죽을 병보다 내가 걸린 감기가 더 아픈 법이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먼 남의 일일 뿐이다. MBC에선 중립적인 정보 전달이라는 입장을 운운하며 우크라이나 CCTV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그 영상을 보며 '핵무기 쏘는 것을 보고 싶다' 이 따위 소리를 해댈 수 있는 까닭은 내 조국, 한국에게 이 일은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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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련 없다'는 판단은 인간을 얼마나 다른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어떤 외형을 씌우는 지에 따라 한 개인이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리도록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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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사 전문가가 현재 러시아 병력의 사기저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첨단 무기'의 부족을 들었다. 그 결과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 전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슬라브 민족, 나와 같은 외형의 한 인격을 스스로 살상해야 한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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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면 무엇인가? 첨단무기를 사용하면, 정밀 유도 타격이 가능한 무기를 사용하면, 죄책감을 덜어준다는 말이다. 내가 쏜 미사일에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게임처럼 전쟁을 '즐길 수' 있다. 껍데기만 다시 씌우면 충분히 같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결의 행동을 편안하게 하게 만들 수 있다.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을 보지 않았기에 '생명'이라는 생각없이, 위생적인 포장 껍데기로 감싼 '식품'으로 편안하게 만족스럽게 그것을 구입하는 지금의 나처럼, 조금만 껍데기를 바꾸면, 군인들로 하여금 큰 죄책감 없이 편안하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수용소에 갖힌 유대인들의 '외형'을 비천하게 만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국제] 美軍 민간인 오인 사살 동영상 파문
지난 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 통신 기자 2명 등 10여 명의 민간인을 무장반군으로 오인ㆍ사살하는 동영상이 유출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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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기 힘들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꾸 다른 껍데기를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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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비록 나를 더 편할게 만드는 것일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쉽게 원래의 모습들에 임의적으로 껍데기를 더하거나 제하도록 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원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날 것의 무언가에 직면하도록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점점 사라질 인간적이지 못한 것들엥 두 눈을 부릅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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