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아버님이 소천하셨기에, 외가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감당하셔야 했던 어머니의 자리는 할머니께서 맡아주셨다.
할머니는 내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주시는 분이셨다.
무조건 긍정적 수용(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이론을 대학에서 배우기 전부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 할머니는 내게 언제나 그런 지지를 해주시는 분이셨다.
시쳇말로 그 분은 내가 잘못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어렸을 적 잠에서 깨며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백이면 백,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꿈을 꾸면 그렇게 일어났다.
할머니는 내게 그런 분이셨기에, 그런 할머니 꿈을 꾸면 꼭 울면서 일어났다.
나이가 다 들었는데도, 오늘도 울면서 잠에서 깨었다.
할머니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오늘 꿈 속에서는 기억을 많이 잃어버린 할머니가 있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을 그 분을 위해 꿈 속의 나는 점잖게 인사하고 꼭 안아드렸다.
그 따뜻하고 포근한 품 속에서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그런 나를 인자하게 바라보시며, 할머니가 말하셨다.
"이거 우리 대범이 아니니!"
기억을 잃은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꿈 속에서도 펑펑 소리내어 울었다.
좋아서 울었다. 기뻐서 울었다. 감사해서 울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내가 당신을 찾아갈 때면 꼭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대범이 왔니?"
나는 할머니의 그 첫마디에서부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대범이"
꿈 속에서도 그 분은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비록 꿈이었지만, 나는 그 분에게서 다시 사랑을 느꼈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꿈을 꾸며 일어났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실은 슬몃 걱정이 된다.
집에서 떨어져 대학을 다닐 때, 가끔 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시곤 했다.
갑자기 꿈을 꾸었는데, 내가 나왔다고,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연락했다셨다.
나는 그런 꿈을 꾸는 신통력은 없지만, 오늘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강건하셨던 할머니.
언제나 당당한 뒷모습을 보이시던 내 할머니.
이제는 많이 약해진 뒷모습을 우리에게 내보이고 계시지만.
육체는 쇠하고 파스라이 사그라질지라도, 영혼은 더 맑고 또렷하게 하늘나라를 바라보시기를.
이제는 그 때처럼 "우리 대범이"라는 그 분의 목소리를 더 들을수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 분의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사랑하는 내 할머니.
나는 당신의 손자여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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