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태백산맥』 서평 (ft. 윌라 <오디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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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소식지 : 편지/에세이 & 칼럼 & 리뷰

조정래의 『태백산맥』 서평 (ft. 윌라 <오디어북>)

by 독/한/아빠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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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태백산맥을 읽었다

각 나이 때에 꼭 읽어야 한다는 느낌의 추천 도서 목록이 있고, 또한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들을 발견하곤 했지만, 바쁜 일상을 핑계로 (실은 게으른 탓으로) 다독하지 못했다. 2025년 새해에는 작년보다 발전한 삶을 살아갈 요량으로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매개를 찾다가 윌라 오디오북을 알게 되었다. 이 어플의 도움을 받은 지 이제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오디오북 앱 윌라를 통해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10권 전권을 완독 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일을 하며 독서를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은 오디오북의 큰 장점이었다. 윌라라는 플랫폼 덕분에 이 방대한 작품을 소화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한다.

 

이미지 출처, copyright: 연합뉴스 (https://m.yonhapnewstv.co.kr/)

 

태백산맥을 읽으며 마주했던 불편함에 대하여 

유명한 소설이고, 꼭 한 번 읽어봐야지 싶었던 소설이었는데, 태백산맥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사실 불편함이었다. 물론 나는 작가가 특정한 사상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서술이 표면적으로 한 편을 옹호하고, 다른 한 편을 폄훼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미군과 한국군의 경우에는 자신의 단순한 욕구와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민중을 약탈하고 심지어 여성을 겁간하는 장면을 자주 드러내는 반면, 빨치산 투쟁을 지속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민중을 구하고, 이상적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묘사하곤 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현재 알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국가 북한의 실상과 겹치며 거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오늘은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인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3대 세습의 독재체제로 대변되므로 작가의 사회주의자 묘사는 지속적인 거부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사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대한민국 현대 문학사에서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초판이 인쇄된 당시에도 그랬지만, 아마 지금 출판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파격으로 이해될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 사상적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얼마나 논쟁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남부군>에 등장한 '빨치산' (파르티잔, Partisan)

 

한 사람의 이야기로서 역사: 민중의 고단했던 삶의 기록. 

처음의 불편감으로 실은 전권 완독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는 새해에 세운 첫 목표였기 때문에 간단히 그만두기 어려웠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이다 싶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 7권, 8권에 이르렀을 때 나는 비로소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불편함은 바로 낯섦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직시하지 못했던 나의 고정관념과 마주했다.

조정래의 글은 주류 역사 서술에서 간과된, 아니 외면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충돌이나 민족 간의 분열이라는 큰 흐름의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그 시대를 견뎌야 했던 민중, 어쩌면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민초들의 삶을 서술했다. 역사서에서는 기록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있었던 누군가의 이야기. 큰 강의 흐름을 비틀어 버릴 수 없지만, 다른 방향에서 모여 결국 그 강의 흐름을 도왔던 어떤 개울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 시대를 더욱 풍성히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시각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었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 (이미지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문득 오래전 본 윤태호의 웹툰 인천상륙작전이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도 선악의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다. 여러 등장인물이 주인공처럼 나왔다. 그들이 좌우를 결정하고, 살아감의 태도를 정하는 것에는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개인의 동의와 호불호와 관계없이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 하나 완전히 응원할 수도,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갔는데, 실은 많은 등장인물이 종국에는 비참하게 사라져갔다. 작품이 끝난 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역사 속에서 가장 고통받았던 것은 대개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다. 그 민중이 내 조상이고,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마음이 더 먹먹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다다라 오래전 그 감정에 마주했다.

 

태백산맥의 가치: 싱글 스토리(Single Story)의 해체

그런 점에서 문화와 역사 교육의 관점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가지는 가치는 "싱글 스토리(single story)"의 해체라고 생각한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TED 강의에서 언급한 싱글 스토리는 특정 관점에서만 그려진 단일한 이야기, 즉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하고 특정한 시각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서사를 의미한다.

https://youtu.be/D9Ihs241zeg?si=XnpaLULmaNqhR0G5

Chimamanda Ngozi Adichie: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 TED

태백산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던 반공주의적 싱글 스토리에 도전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현재의 남과 북의 결과적 실상을 비교할 수 있음을 통해, 혹은 또 다른 개인적인 성장의 배경을 통해, 어쩌면 무지불식 간에 남과 북의 체제의 우열을 결정해 버렸던 것 같다. 물론 비단 남북한의 비교뿐 아니라 지난 미소의 냉전시대 속의 체제 경쟁의 결과는 익히 아는 바이며 부인할 수 없다. 역사는 승리자를 변호하는 기록이라 했던가?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너무 빨리 다른 생각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그들이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그들도 당연히 그러리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싱글 스토리는 편리하지만 위험하다. 특정 관점만을 정당화하며, 그 외의 시각과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래는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민중의 이야기를 복원하며 다층적 서사를 구성했다. 이는 역사가 단일한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받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오늘 솟은 태백산맥: 한국의 이념적 갈등

문득 조정래가 그린 이념의 대립은 과거의 이야기에 국한될 것이 아니다 싶다. 대한민국에서 이념적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중 벌어진 내란 사태와 이에 대한 시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자유 대한민국"과 "좌빨", "빨갱이"라는 비난의 외침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그려진 분열이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미지 출처, copyright: 연합뉴스

 

태백산맥의 상흔은 오늘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아니, 다시 재생되는 것 같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문제를 넘어, 오늘날의 정치와 사회적 정체성 형성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념 대립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구조적 문제다. 조정래는 이를 역사 속에서 다루었지만, 독자로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현재의 관점에서 더 깊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다.

태백산맥은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도 여전히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의 싱글 스토리를 해체하고 역사와 민중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백산맥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익숙했던 서사에 균열이 생길 때 느끼는 낯섦이며, 그 낯섦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기회를 얻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념적 갈등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태백산맥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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