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유학 #.33] 독일 시골 생활,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feat. 독일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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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생활 & 문화

[독일생활&유학 #.33] 독일 시골 생활,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feat. 독일 코로나)

by 독/한/아빠 2020.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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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어려움이 한국을 떠나 이 곳 독일까지 덮쳤다.

새로운 코로나 관련 뉴스가 연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헤센 주에도 이번주 월요일부터 6주간 학교 휴교령을 내려졌다. 어제부터는 마트, 병원, 약국 등 필요시설을 제외하곤 일반 매장의 영업도 금지되었다. 독일연방정부는 이탈리아와 같은 인구이동 제한에는 극히 소극적이라 알고 있지만, 점차 빠르게 확산되는 감염자의 추이를 볼 때 혹시 모를 상황까지도 예상하고 준비해야하나 조심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젊은 독일 농부는 올해 농사를 위해 밭을 갈기 시작했다. 사람과 장소는 다를 수 있지만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봄의 풍경이다. 또다시 계절은 시작되었고, 어느 누군가는 한 해 준비를 위해 어김없이 밭을 갈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나름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

원체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에 살고 있어 어차피 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고, 집 뒤로 숲과 평야가 탁 트여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답답하지 않다. 심지어 매일 오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책은 망중한의 평온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최근 며칠은 하늘이 유달리 넓고 아름다웠다. 독일 특유의 변화무쌍한 날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따뜻하고 노곤한 온기는 어김없이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알게 해 주었다.

 

 

먼 숲과 농경로 주위의 나무들은 붉그레 잎망울을 틔우고 있었다. 땅은 녹아 조금은 질척거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니 여느 때와 똑같은 봄의 모습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몇 주 뒤에 있을 부활절을 준비했다. (참고로 독일 최대 명절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다.) 부활절 계란과 부활절 토끼로 장식을 만들어 집 안팎을 꾸몄다. 그 일은 몇 년 전, 이 집에서 살았던 이름모를 누군가도 똑같이 했을 법한 그런 일이었다.

 

이 날 오후 옆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유치원이 문을 닫아 집에서만 놀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그네 가지고, 거실에다 달아주셨다. 아마 할아버지는 사십년 전쯤 자신의 자녀를 위해 그 일을 했지 싶다. 십여 년 전에는 자신의 손자들을 위해 그 일을 했을 테고. 오늘 아침에는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국 꼬마들을 위해 창고 구석에 있던 그 녀석을 꺼내 이전과 다름없이 먼지를 털어냈을 것이다. 

 

 

생각보다 높이 오르는 그네 때문에 아이들이 신났다. 독일 시골 나무집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하나라도 새로운 것이 있을까? 물론, (말장난 같지만) 모든 것들의 최초를 제외하고 말이다. 언제나 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은 지나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마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계속되는 한 이러한 모습들은 어김이 없이 반복될 것이다. 

 

오늘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이런 어려움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도, (잘은 모르지만 분명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인가?

 

 


 

아이들이 뒷마당 잔디 사이 드문드문 망울을 틔운 들꽃을 꺾어 소꿉놀이를 한다. 작은 생명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런 모습 마저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봄의 한 장면일 것 같았다. 

 

 

문득 작년 봄이 궁금해졌다. 

작년 이 맘 때, 나는 한국에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의 나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봄이었지만, 그 봄은 분명하게 나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작년의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독일의 봄을 오늘의 나는 너무 당연한 일상으로 누리고 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1년 전 그 봄을, 이젠 추억의 옷을 입고 먼 발치에 있는 지나간 그 봄을 다시 꺼내보았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누리는 독일의 봄 위에 조심스럽게 포개 놓아 본다.

 


 

"오감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대상을,

어떠한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겨울에서 봄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계절을 좋아한다.

봄이 옮을 느끼게 하는

여러 감각들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후각을 통해 이를 느낀다.

 

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

미처 발하지 못하고 있던

흙의 향기는

따사로운 온기가

땅 깊숙한 곳까지

구석구석

찾아들어가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성실하고 꾸준한 봄볕이

마침내

언 땅 속에 웅크린 흙내를

한 껏 품에 안은채로

내 콧 속으로 들어올 때

나는 비로소

봄을 느낀다.

 

봄이 옮을

실감케 하는 것은

꽃내음의 향긋함이 아니라

얼었던 흙이 담아내는

먼지의 냄새이다.

 

나는 그 먼지 내에서

생명의 태동을 느낀다.

봄의 생명력을 실감한다.

 

2019년 3월 15일. 흙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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