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큰 공용건물이 하나 있다. 꽤 큰 거실에 여러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파티나 모임을 즐길 수 있다. 옹기종기 모여사는 여러 가족들이 이곳을 사용하고 싶으면 미리 예약을 하고, 주위에 양해를 구해 사용할 수 있다. 하루에 한 30유로 정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공용건물 관리비로만 사용한다.
여하튼 본론으로 들어가면, 얼마 전부터 옆집 한스 귄터 아저씨가 이 모임 장소 공사를 시작했다. 큰 모임 장소에 비해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아 이블린 아주머니가 주방을 만들어 달라고 하신 모양이었다. 문을 뜯어내고, 공간을 넓히고, 싱크대와 주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공사였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아저씨가 직접 하신다는 것이다.
나도 나름 집을 꾸미고 고치는 것을 좋아해 한국에서도 드릴, 전기톱 등 몇가지 목공도구를 구입해 작업을 해보았지만, 독일에서 내가 하는 정도는 여느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독일은 워낙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작업은 직접 한다. 나무로 아이들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고, 간단한 전기, 배관 같은 설비도 뚝딱 혼자서 한다. 그런 면에서 어떻게 건물을 점검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독일 사람들은 준전문가 수준이다.
이제 사순절 40일이 지나면 부활절이 된다. 아저씨께서 호기롭게 부활절 파티는 새로운 주방에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셨던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아저씨는 본인의 약속을 달성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도 일하신다. 처음에는 가능성이 낮아보였는데, 이제 보니 어찌어찌 될 것 같은 모양새다. 독일인들이 겉에서 보면 일을 별로 안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독일인들에게 '휴식, 휴가, 휴일'은 거의 최상위 가치인 듯하다), 개인이 갖춘 근면한 성품에 놀라곤 한다. 그래서 선진국인 것이지.
말을 하면 자꾸 밖으로 새네. 다시 말 길을 잡아 어느날 저녁, 둘째랑 캄캄한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노란 작업등이 공사장소에서 밖으로 새어 나왔다. 둘째는 살짝 안은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 있나보다. 한스 귄터가 있나?"
예상치 못한 둘째의 말에 크게 웃었다. 한스 귄터 아저씨는 70에 가까운 할아버지고 둘째는 4살, 한국 나이로는 5살 꼬마이다. 그런데 둘째가 친구처럼 아저씨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참 독일스럽다 생각했고, 아이들에게 점점 독일 문화가 익숙해지는구나 싶었다.
독일에도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존댓말이 있다.
흔히 존댓말을 'Sie(당신, 님) 언어', 평어를 'Du(너) 언어'이라 말한다. 독일 사람들도 예의와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는 깍듯하고 철저하게 둘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Sie 언어'를 말할 때는 결코 이름을 함께 부르지 않는다. 이 때는 성(Familiename)를 부른다. 일테면 '정 선생님, 김 부장님' 같은 것이다. 반면 'Du 언어'를 사용할 때는 이름을 부른다. '대범아, 길동아'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존댓말과 독일 존댓말의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독일 존댓말은 쌍방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처음 본 사람들이나 공적인 관계에서는 서로 "Sie 언어"를 사용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회사에서도 서로의 관계가 친해지면 팀장이나 사장도 직원에게 "이제 우리 서로 Du(너)라고 부르자."라고 한다. 그럼 그때부터는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Du(너)라고 호칭할 수 있다. 직원들이 사장이나 팀장을 'Sie(당신, 님)'이라고 부르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Du(너)'라고 칭하는 법은 없다. Sie면 서로 Sie인 것이고, Du면 서로 Du인 것이다.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아저씨, 아주머니를 'Sie'라고 불렀다. 그것이 어른을 존중하는 태도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아주머니가 불편해 하셨다. "우리 서로 Du라고 부르자. 여기선 모두 가족이기 때문에 Du라고 불러."라고 말해주셨다. 그때부터 우리들을 서로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있다. 아이들 역시 '한스 귄터, 이블린'하고 편하게 부른다. 그것이 이 곳 문화이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독일 문화가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무엇을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여러 사람을 포용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품이 큰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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