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유학 #.32] 독일 '코로나' 이야기 (20년 3월 14일, 현재)
본문 바로가기
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생활 & 문화

[독일생활&유학 #.32] 독일 '코로나' 이야기 (20년 3월 14일, 현재)

by 독/한/아빠 2020. 3. 14.
728x90
반응형

#.1 평온함의 속내, 싹트는 불신

 

그동안 독일에서 들었던 '코로나' 관련 뉴스는 항상 해외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본국과 관계가 없는 다른 나라의 먼 소식 정도로 여겨왔던 것이 틀림없다. 

 

지난달 카니발 축제에서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을 때조차 라디오나 신문의 뉘앙스는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보도한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것이 국민의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독일 정부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한국 언론이 지나친 코로나 공포를 판매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름의 인상적 느낌을 가지고 독일 친구에게 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네 말도 맞긴 하는데, 나는 솔직히 정부를 아주 신뢰하진 못하겠어. 그들은 무언가를 감추는 느낌이야. 예를 들어 헤센(주)에 5명의 감염자가 있다고 발표를 했다고 해. 그렇지만 그들은 모든 정보를 알려주진 않아.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서 감염되었는지를 밝히지 않지. 누가 알겠어?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 중에 감염자가 있을지 말이야.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니 스스로 알아서 대책을 마련해야겠지."

 

뭐랄까? 사회 전반에 걸쳐 외부로 드러나는 모습은 담담하고 평온하지만, 각 개인들에게 깊숙이 숨겨져 있는 불신과 염려의 조각을 그때 처음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코로나 바이러스 하루 감염자 추이 (출처: https://de.statista.com/)

 


 

#.2 한국의 '신천지 사건', 그리고 동양인 차별

 

독일어 학원에는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우리 반에도 중국(홍콩), 이탈리아, 이란을 포함하여 약 15개국의 학생들이 있다. 초기(그리고 일부는 지금조차도) 코로나는 독감에 지나지 않는 심각하지 않은 질병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는 거의 대부분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너희 여기엔 코로나 가지고 온 건 아니지?" 그리고 그 대상은 또한 거의 매번 이탈리아와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농담엔 악의가 없었고, 때문에 우리 역시 웃어넘길 수 있었다.

 

소위 '신천지 사건'은 독일에서도 꽤 유명했다. 감염자가 급증했고, 한국인들의 입국을 여러 형태로 제한하는 나라가 늘어났다. 독일 어른들의 경우 여전히 라디오나 신문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는데, 아마 그중 한 매체에서 이를 꽤 소상히 다루었던 모양이다. 옆집 아저씨가 하루는 신천지와 대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국의 가족들이 건강한지 안부를 물어왔다.

 

유럽 내 '동양인에 대한 혐오'에 대한 뉴스가 입에 오르내리던 것도 이맘때이다. 마르부르크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독일 한인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름의 위기와 불안의식이 겉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의 모임 자체가 독일인들에게 불안요소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마르부르크에선 '동양인 혐오'가 드러내 놓고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오히려 한국인 사이에서 오지 않은 현실에 대한 염려(혹은 피해의식)가 어느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신학기를 준비하던 여러 유학생들이 이때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외부활동을 스스로 삼가는 편을 옳게 여겼다. 

 

 

 

 

비교적 안정적이던 동네마트에서도 일부 품목들은 몽땅 사라지기 일쑤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경우는 스파게티면과 화장지, 비누 등이 대표적인 사재기 품목인 듯 하다.

 


 

#.3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내 코로나 감염자 확산

 

감염자 수만 가지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가늠하던 이전에는 대부분 한국을 위험국가라고 생각했다. 상황은 급격히 변화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여행객을 시작으로 독일 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국경을 서로 접하고 있는 유럽의 특성상 감염경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북부 이탈리아와 연하고 있는 남부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독일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검사 시스템과 대처능력에 대한 칭찬을 듣기 시작했다. 한국의 감염자가 많은 까닭이 실제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탁월한 검사능력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 정부의 대처에 의문과 불안을 가진 것은 아마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뿐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 즈음 독일의 상황은 점차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당시 함께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는 생물학 박사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이 독일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실제 환자의 수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했다. 독일의 의료 시스템 특성 때문이었다. 독일 정부는 현재 대학병원을 통해서만 감염자 수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은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고, 주치의 개념의 개인병원(Praxis)을 방문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곳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단키트가 없다. 때문에 이 곳에서 감기 혹은 폐렴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 중 실제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마르부르크 근처 기센이라는 도시에서 확진자가 3명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점점 국민들 사이에서 불안과 불신이 내면 깊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함을 알 수 있었다. 간혹 동네 상점에서 휴지와 스파게티가 모두 동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스크는 오프라인, 온라인 할 것 없이 오래전부터 구입하기 어려웠다. (물론 실제 쓰고 다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여전히 겉으로 드러난 대부분의 세상은 평화로웠다. 학교와 유치원, 어학원 등 그 어디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책이나 방안에 대한 공지가 없었다. 그저 스스로 손을 잘 씻고 개인위생을 잘 유지하라는 일반적인 권고뿐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드카를 마시면 코로나를 이길 수 있어.' 여전히 이런 류의 농담이 자주 들렸다.

 

 

3월 13일(어제), 독일 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상황 (출처: https://de.statista.com/)

 


#.4 각종 행사의 연기, 그리고 휴교

 

독일이 느끼는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WHO에서 판데믹을 선포했다. 이탈리아의 바이러스 사망자가 급증했고, 인구의 이동을 통제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독일의 감염자 증가 추이가 중국과 이탈리아를 따라가고 있다는 보도가 속속 나왔다. 안전을 책임지는 시설과 센터의 행정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치원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알리는 게시판 내용. 이유는 적혀져있지 않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유치원에서 준비한 몇몇 행사도 취소되었다고 안내되었다. 다음날 독일 하루 확진자가 400명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나왔다. 일부 학생들은 왜 학교에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담당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담당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했다. 아직 확답을 줄 수는 없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헤센 정부의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즈음 몇몇 그룹의 채팅방을 통해 헤센의 모든 학교와 유치원 등이 오늘부터 부활절까지, 약 6주간 휴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마 이때쯤 이미 결정은 이루어졌으리라. 스스로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독일 특성상 결정의 발표 자체를 서로 미루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날 자정 홈페이지를 통해 헤센 주의 모든 학교가 6주간 휴교한다는 발표를 확인했다. 내면적인 불안을 제외하면 겉으로 불안이 표현된 지 불과 1~2일 사이에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메르켈 총리는 한 매체를 통해 작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국경을 폐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자신의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신뢰하며 지금 독일은 이를 시험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백신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인구의 70% 정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제 국민 개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때였던 것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 “인구 70% 코로나 감염 예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1일 인구의 70%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이에 대한 면역력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염병의 “확산 속도를 늦춰 보건체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메르켈 총리는 국경 폐쇄 조치가 충분치 않다면서 이탈리아 입국자의 방문을 금지하

www.voakorea.com


#.5 글을 닫으며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던가? 그곳에 있을 때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던 긍정적인 모습을 나름 자주 볼 수 있다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문제로 자리 잡게 된 지금, 초기부터 이 문제에 당면하여 성실하게 해결해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전 국민들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근자에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의 아픔에 쉬이 눈과 귀를 닫으면, 내가 아플 때 나 또한 그리되리라." 

나는 그리 공감적인 인물은 되지 못한다.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와는 크게 관계없다고 생각한 타인의 아픔, 그래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던 그들의 아픔은 사실 내가 수 없이 당면할 뻔했던, 그리고 이제 곧 마주할 흔하디 흔한 나의 아픔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독일은 한국의 어제를 경험하게 될 터이다.

 

 

 

 

 

 

 

728x90
반응형

TOP

© Designed by BaH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