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어려움이 한국을 떠나 이 곳 독일까지 덮쳤다.
새로운 코로나 관련 뉴스가 연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헤센 주에도 이번주 월요일부터 6주간 학교 휴교령을 내려졌다. 어제부터는 마트, 병원, 약국 등 필요시설을 제외하곤 일반 매장의 영업도 금지되었다. 독일연방정부는 이탈리아와 같은 인구이동 제한에는 극히 소극적이라 알고 있지만, 점차 빠르게 확산되는 감염자의 추이를 볼 때 혹시 모를 상황까지도 예상하고 준비해야하나 조심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나름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
원체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에 살고 있어 어차피 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고, 집 뒤로 숲과 평야가 탁 트여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답답하지 않다. 심지어 매일 오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책은 망중한의 평온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최근 며칠은 하늘이 유달리 넓고 아름다웠다. 독일 특유의 변화무쌍한 날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따뜻하고 노곤한 온기는 어김없이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알게 해 주었다.
아이들과 나는 몇 주 뒤에 있을 부활절을 준비했다. (참고로 독일 최대 명절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다.) 부활절 계란과 부활절 토끼로 장식을 만들어 집 안팎을 꾸몄다. 그 일은 몇 년 전, 이 집에서 살았던 이름모를 누군가도 똑같이 했을 법한 그런 일이었다.
이 날 오후 옆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유치원이 문을 닫아 집에서만 놀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그네 가지고, 거실에다 달아주셨다. 아마 할아버지는 사십년 전쯤 자신의 자녀를 위해 그 일을 했지 싶다. 십여 년 전에는 자신의 손자들을 위해 그 일을 했을 테고. 오늘 아침에는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국 꼬마들을 위해 창고 구석에 있던 그 녀석을 꺼내 이전과 다름없이 먼지를 털어냈을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하나라도 새로운 것이 있을까? 물론, (말장난 같지만) 모든 것들의 최초를 제외하고 말이다. 언제나 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은 지나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마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계속되는 한 이러한 모습들은 어김이 없이 반복될 것이다.
오늘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이런 어려움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도, (잘은 모르지만 분명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인가?
문득 작년 봄이 궁금해졌다.
작년 이 맘 때, 나는 한국에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의 나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봄이었지만, 그 봄은 분명하게 나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작년의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독일의 봄을 오늘의 나는 너무 당연한 일상으로 누리고 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1년 전 그 봄을, 이젠 추억의 옷을 입고 먼 발치에 있는 지나간 그 봄을 다시 꺼내보았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누리는 독일의 봄 위에 조심스럽게 포개 놓아 본다.
"오감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대상을,
어떠한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겨울에서 봄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계절을 좋아한다.
봄이 옮을 느끼게 하는
여러 감각들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후각을 통해 이를 느낀다.
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
미처 발하지 못하고 있던
흙의 향기는
따사로운 온기가
땅 깊숙한 곳까지
구석구석
찾아들어가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성실하고 꾸준한 봄볕이
마침내
언 땅 속에 웅크린 흙내를
한 껏 품에 안은채로
내 콧 속으로 들어올 때
나는 비로소
봄을 느낀다.
봄이 옮을
실감케 하는 것은
꽃내음의 향긋함이 아니라
얼었던 흙이 담아내는
먼지의 냄새이다.
나는 그 먼지 내에서
생명의 태동을 느낀다.
봄의 생명력을 실감한다.
2019년 3월 15일. 흙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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