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다인종 국가이다.
독일 시민권을 지닌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백인도, 흑인도, 황인도 있다. 그래서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자신이 외국인이라 생각하며 어색할 수 있어도 정작 독일에 오래 산 사람들은 별로 그리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이 독일인들이 무뚝뚝하다는 나름의 선입견, 스테레오 타입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모두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은 동시에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동네엔 아시아 사람이 거의 없다. 대학생들이 많은 마르부르크 시내와 조금 떨어진 곳 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눈에 띈다. 뭐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우린 동네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놀이터에서]
작은 마을이고, 독일 역시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추세다 보니 동네 놀이터를 찾는 가족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한 번 놀이터에서 만난 가족들은 이후에도 자주 얼굴을 보게 된다. 처음엔 의례적인 인사만 주고받았다. 한두 번, 자꾸 보다 보면, 비록 스치듯 지나치는 만남이지만 제법 친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와 육아에 대한 이야기,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 등 꽤 재미있게 농담을 섞어가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헤어지려던 때였다.
나: 오늘 즐거웠어요. 그런데 아저씬 어디 사세요?
아저씨: *** 아세요? 한 3년 전에 이사 와서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여기 놀이터처럼 다듬은 돌로 둘레를 이은 정원도 있고.
나: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림) 글쎄 잘 모르겠어요.
아저씨: 당신 집에서 나와서 정면으로 쭉 올라가다가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오른편에 세 번째 집이에요.
나: (완전히 감을 잡음) 아, 그렇구나. 이해했어요. 그럼 종종 봐요.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그래요. 잘 가요.
나름 동네 주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간다는 생각으로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던 찰나였다.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 근데 저 아저씨가 분명히 '우리 집에서 나와서'라고 이야기했지? 우리 집을 어떻게 알고 있지?>
[두 번째 이야기: 택배 아저씨]
독일 음식도 많이 먹지만, 한국인은 한국 밥심으로 살아가는 법. 인터넷으로 한국음식 재료를 종종 주문하게 된다. 독일 역시 몇 개의 택배회사가 있고, 회사마다 배송지역을 맡은 직원이 특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오는 택배직원은 늘 그 직원일 가능성이 많다.
(초인종 '딩동 딩동')
택배 아저씨: 택배 왔습니다.
아내: 네, 나갈게요.
(아이들도 조르르 엄마를 따라 나간다)
아내: 고맙습니다.
택배 아저씨: (갑자기 아이들을 보며 깨달은 듯) 혹시 마르부르크 시내에 자주 나오시지 않나요?
아내: (잠시 생각하며) 음, 글쎄 자주는 아니지만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고 나가긴 해요.
택배 아저씨: (밝은 얼굴로) 아이들과 가족들이 같이 시내에 다니는 것을 봤어요. 아, 여기에 사시는군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허기야, 자녀를 많이 낳지 않으니 세 명의 자녀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동양인이기까지 하니 기억에 안 남으래야 안 남을 수가 없었겠다 싶다. 조금 소름 돋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뭐 당연한 말이겠으나, 우린 어디에 가든지 절대 죄를 짓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이야기: 유치원에서]
첫째 지온이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입학반'에 해당하는 Maxikinder 반 모임을 일주일에 두 번 갖는다. 여러 반에 있는 Maxikinder들이 특별 수업장소로 이동하여 모임을 가지는데, 지온이가 들어가면 여러 친구들이 소리친다.
아이들: (지온이를 향해 손짓을 하며) 지온아, 내 옆에 앉아! 여기에 앉아! 이리로 와!
다소 수줍음이 있는 편인 지온이는 빈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옆에 앉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재잘재잘 독일어로 떠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온이 말로는 독일 어린아이들의 눈엔 한국인의 유난히 검고 튼튼한 머리카락이나, 머리를 땋은 모양이 신기한 모양이다. 친구들은 돌아가며 지온이 주위로 모여 머리를 만지거나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어쩌다 보니 눈의 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의 행동과 존재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인종차별은 아직은 느끼고 있지 못하지만, 그것도 매한가지다 싶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차피 똑같이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 아닌가?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뭐 거의 국가대표 수준 아닌가? 우리 가족이 어쨌든 이곳에선 한국인의 스테레오 타입이 될 것이다!
'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 > 독일생활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생활&유학 #.33] 독일 시골 생활,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feat. 독일 코로나) (0) | 2020.03.19 |
---|---|
[독일생활&유학 #.32] 독일 '코로나' 이야기 (20년 3월 14일, 현재) (2) | 2020.03.14 |
[독일생활&유학 #.30] 독일 존댓말, 나이와 관계없이 친하면 '너!(Du)' (0) | 2020.03.06 |
[독일생활&유학 #.29] 독일에서 맞는 삼일절 (feat. 한국 코로나, 함께 기도합니다) (0) | 2020.03.01 |
[독일생활&유학 #.28] 독일 축제: 카니발(Karneval) & 코스튬 퍼레이드(Fasching) (0) | 2020.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