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희망'이 사람을 죽인다 (feat.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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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소식지 : 편지/에세이 & 칼럼 & 리뷰

[심리+] '희망'이 사람을 죽인다 (feat. 빅터 프랭클)

by 독/한/아빠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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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심리학에서 '실존'이란 개념을 확장했던 빅터 프랭클.


유태인이었던 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었다. 전쟁 직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출간했다.


'인간이 가진 어둠의 극단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현실이었다기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던 그 진실 앞에, 나는 몇 번이고 이런 질문을 속으로 되뇌며 답도 없는 질문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프랭클은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꿈에서 천사를 만난 이야기를 프랭클에게 들려주었다. 천사로부터 이 지옥과 같은 전쟁이 언제 끝날 지 정확한 날짜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살아났다'. 죽음의 몰골을 하고 살아있는 체하는, 허울만 산 사람들 속에서 그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언제나 활기찼고, 언제나 웃고 있었다.


희망이 그를 살린 것이다. 희망을 가진 그는, 희망을 품은 그는 정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었다.
며칠, 몇 달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 희망의 날이 다가왔다.
누구나, 그러나 오로지 그만 제외하고, 알고 예상했던 사실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희망은 그를 비웃고 지나갔으며 더 깊은 절망의 현실은 폐부에 사무쳤다
이튿날 그는 죽었다.


그를 죽음에서 살렸던 그 희망이 그를 죽인 것이다.희망은 사람을 죽게 한다.

 

 


 


비단 그때뿐일까?비단 그 사람에게만 그런 것뿐일까?아니.나도 그러하다.완전히 똑같다.
홀로 품은 희망 때문에 하늘을 날 것만 같다가, 그 희망 때문에 이내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이란,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을 하나, 스쳐가는 뒷모습은 잔인한 악마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살고 싶다.

내가 살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나?그래, 차라리 '희망'을 품지 말자.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조차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내가 바라는 소망이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래. 내가 가진 소망은 눈부시게 찬란한 희망의 얼굴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다행스럽게도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절망의 얼굴도 아닐 것이다.아마 내가 가진 소망은 아무 얼굴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투명한 소망이여 오라. 희미하게 멀리서 어른거리는 그 얼굴 따위야 무엇이 그리 중하랴. 지나치게 아름다운 희망도 필요 없고, 지나치게 지독스러운 절망도 의미 없다.   
나는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오늘의 길만 또렷이 보겠다. 아무 표정도 없는, 내가 해결해야 할, 그리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오늘만을 보고 가마.


나는 정말로 살고 싶다.그래, 그렇기에 나는 그저 오늘을 살겠다.


내일 올 종말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과나무나 심었던 그 옛날 스피노자마냥 나도 그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하며 그저 그렇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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