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모순적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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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모순적 진리

by 독/한/아빠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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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얼마나 모순적인 것 투성인가?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산상수훈의 '팔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는 얼마나 역설적이고 모순적인가?

보통의 우리는 그런 삶을 너무나 당연하게 원하지 않는다.

이 말씀이 설혹 진리라 할 지라도 이는 한 개인이 받아들이기엔 버거운 진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시 팔복에서 그 진실을 이렇게 뒤틀기도 했다.

 

 

팔복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나 내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 나는 어떤 모순과 역설은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떠한 '역설의 진리'는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지만,

또 다른 '역설의 진리'는 그렇기에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 인용한 적이 있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삶으로 증명해내기 위해 짧은 한 평생 스스로 투쟁했던 청년이었다.

 

"늘 참인 것이 오늘의 참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오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조금 비틀어 한 개인의 삶에 적용해본다.

 

"나는 늘 참일 수 없다."

"나는 항상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누군가에겐 쓸모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떨 때는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참으로 모순적이지만, 그래서 되려 편안하기도 하다.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한 개인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나는 그저 세상 속의 한 사람(one of them) 일뿐이다.

내가 맡은 사역과 내가 추구하는 소명은 영원하지 않다("There is no permanent." - Thomas Keating). 

누군가는 이를 패배주의적, 비관론적 사고라 말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적어도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세상의 진실에 직면하는 용기 있는 행동인 것 같다.

혹은 모든 것을 도맡을 수 없는 나의 빈 곳을 채워주실 전능자를 기다리는 영적 갈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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