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베레스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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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베레스 (Overcome)

by 독/한/아빠 2019.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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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날짜: 2019년 8월 15일(목)

묵상 본문: 창세기 37장~38장

 


 

유다는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를 보고는 창녀라고 생각했다.

그는 길가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 밤 함께 보내자."

유다는 그녀가 자기 며느리인 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창 38:15)

 

다말이 출산할 때가 되었는데, 그녀의 태 속에 쌍둥이가 있었다. (중략)

산파가 말했다. "동생이 밀치고 나왔구나."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레스(돌파)라고 했다. (창 28:27~29)

 


 

야곱이 '첫째에게 주어지는 복'을 얻기 위해 별 짓 다하며 수고했던 이야기는 성경에서 유명하다.

아마 고대 근동에서는 첫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런데, 성경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첫째의 복'이 꼭 첫째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믿음의 조상'이요, 복 그 자체(창 12:1)였던 아브라함의 축복은 이삭에게 주어진다.

이삭은 사실 아브라함의 독자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장남은 '이스마엘'이요, 이삭은 아브라함의 차남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 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브라함은 훗날 첩에게서 여러 아들을 얻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삭을 '진정한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삭에게 장남의 축복이 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삭의 복은 역시 차남 '야곱'에게로 돌아갔다.

쌍둥이 둘째였던 야곱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

물론 이 축복이 현실적인 축복은 아니었던 듯하다. 

실제 삶에서 야곱은 거처를 여러 차례 옮겨 다니며 고생고생을 하는 반면,

에서는 큰 재산과 아내와 자녀를 얻어 지역의 유지로 한 평생을 편안하게 살아갔기 때문이다.

 

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이지만, 그가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여 장자의 복을 받지 못한다.

야곱의 장자의 복은 열 한 번째 아들, 요셉이 받는다.

 요셉은 자신에게 내려온 장자의 복을 자신의 첫째 아들인 므나쎄가 받길 바랐지만,

야곱은 요셉의 둘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다.

 


 

첫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이 생물학적 장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처럼

본질상 죄가 없으신, 온전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도

여러 '불온전한' 길, 역설적인 길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

 

 

 

 

인생의 구원을 위해 순전함,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자, 메시아, 그리스도 되신 예수의 출생의 길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예수의 족보,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의 족보를 찬찬히 살펴보면 

특이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인구 계수에도 포함되지 않던 여인의 이름이 여럿 등장하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였던 이스라엘 족보에 여성의 이름이 포함된 것 자체도 놀라운데,

면면을 살펴보면 '창녀(행세), 기생, 이방인, 불륜, 처녀 잉태' 등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방해하는 조건뿐이니 더욱 기이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약하고, 더 불완전하고, 더 이해받지 못했던 이들을

진심으로 포용하고 구원할 수 있으셨던 그리스도 예수,

그래서 당대에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을 역설적으로 잘 드러내준다.

 


<Overcome by Light> by Donnie Nunley (출처: https://www.flickr.com)

 

그 족보에 등장하는 첫 번째 여인이 바로 '다말'이다.

남편의 기업을 잇기 위해 창녀의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그녀는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바로 유다와 다말의 아들,

베레스의 줄기를 통해 이 땅으로 오셨다.

 

베레스는 둘째였으나, 형을 밀치고 먼저 세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그는 '돌파하다(overcome)'라는 뜻의 '베레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모습은 마치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전심으로 사모하는 것,

자신이 사모하는 것을 갈급하게 얻고자 마음,

비록 때로는 그것이 불완전한 방법일 수 있고,

인간적으로 아름다워보이진 않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를 악하다 평가하시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7~8)

 

오늘 진심을 다하여 방법을 찾는 자에게 길을 마련하시고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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