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날짜: 2019년 8월 14일(수)
묵상 본문: 창세기 34장~36장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베델로 돌아가라." (창35:1)
그러고 나서 그들은 길을 떠났다.
큰 두려움이 주변 성읍들에 임했다. 겁에 지린 그들은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했다. (창 35:5)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말씀을 나누신 장소, 곧 베델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들은 베델을 떠났다. 에브랏(*베들레헴)까지는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데, 라헬이 진통을 시작했다. (창 35:15~16)
이스라엘(*야곱)이 계속 진행하다가 막달에델(*베들레헴 어귀)에 진을 쳤다. (창 35:21)
마침내 야곱이 기럇아르바(*헤브론)의 마므레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왔다. (창 35:27)
최근 하나님의 뜻이나 약속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나 약속, 혹은 명령은
크고 거대한 바위와 같이 어느 지점에 굳건히, 확고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람과 같이 이 곳 저곳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진다.
때로는 부드럽고 선선하지만, 때로는 거대하고 강하게,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명령은 이런 바람처럼
언제나 '살아있고, 활동성이 있는' 역동적인 특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창세기를 다시 읽으며,
아브람과 오늘 야곱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의 성취를 돌아보았다.
1. 아브라함
아브람의 본적은 페르시아만 근처 유브라데 강이 흐르는 '우르'라는 곳이다.
그곳에서 지금의 터키 부근의 '하란'으로 이동한다.
하나님은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이 곳을 떠나 '지명한 땅'으로 이동하라 명하셨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은, 그래서 초기 아브람이 정착했던 땅은 '가나안(세겜 어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 곳에서 계속 머물 수 없었다.
어떤 연유인 지 잘 모르겠으나 그는 '무사히 도착했던(창 12:6)' 약속받았던 땅을 떠나
남방 네게브(브엘세바, 헤브론의 남방 부근) 지역으로 내려간다.
네게브도 훗날 이스라엘 영토의 끝을 나타내는 약속의 땅으로 인정되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정착했다고 큰 틀에서 생각해볼 여지도 있지만,
그는 여기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네게브 지방에 큰 기근이 들어 결국 이집트로 떠나가야 했다.
여러 번 정착지를 옮겨가던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어 브엘세바(네게브 지역)에 정착한다.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께 명령받았던 약속의 땅은 '가나안(세겜 부근)'이었지만,
그가 성취한 땅, 최종 종착지는 '네게브(브엘세바 부근)'였다.
2. 야곱(이스라엘)
'험한 인생을 살아왔다(창 47:10)' 스스로 인생을 반추했던 야곱은
그의 말대로 현실적 상황에 따라, 혹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러 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야곱은 이삭이 정착했던 기랏아르바(헤브론)에서 어머니의 고향 '하란'으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베델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다.
후일 그는 큰 가족을 이루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 어귀 가나안 지역의 세겜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마 이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형 에서를 두려워했을 수도 있고 상황적으로 세겜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떠나야만 했다.
일단 상황이 좋지 않아 졌다.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고, 그의 아들들이 이 일로 세겜 지역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그 땅을 노략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빌미로 주변 민족이 힘을 합쳐 자신의 가문에 보복 침략을 가할 수도 있었다.
때마침 하나님께서도 '베델로 돌아가라' 명령하셨다.
자신이 돌아오고자 했던 베델이었으나, 그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그 땅을 바친 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갔다.
'막달에델'을 지나, '에브랏(베들레헴)'을 거쳐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있는 본향 '가럇아르바(헤브론)'로 돌아간다.
사람은, 아니 나는 '떠남'을 무서워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나 명령과 같은 '신앙적인 확신' 때문일 수도 있고,
내 마음과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적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불확실에 대한 어려움을 처음부터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전자의 경우엔 하나님의 약속하심으로 인한 형통을 사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되었던 약속과 현실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때문에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이도 쉽진 않으나),
그로 인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과 상황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면 자칫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지 모른다.
최근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씀으로 오늘 묵상을 맺으련다.
"늘 참인 것이 오늘 참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오늘의 하나님이십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 Gesammelte schriften, s.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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