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교육칼럼] 내가 독일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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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소식지 : 편지/에세이 & 칼럼 & 리뷰

[경험교육칼럼] 내가 독일에 온 이유

by 독/한/아빠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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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일, 그것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마르부르크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이곳에 있는 필립스 대학교의 한 전공과정 때문이다.

 

모험 및 경험교육 석사과정, 독일어로는 아래와 같이 쓴다.

Abenteuer / Erlebnis-pädagogik

 

우니아시스트를 통해 지원할 수 있는 독일 대학과정 약 4,800개 중 유일하게 필립스 대학만이 '모험'과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전공은 독일로 오기전, 내가 일했던 한국의 직업 현장과 가장 밀접했다.

 

당시 나는 직업적으로 반복되는 일과 관계에서 소진이 심했고, 무엇보다 이 전공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갈급했던 차였다. 때문에 나는 깊은 고민 없이 한국의 모든 것들을 정리한 뒤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떠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다시 그 때를 돌아보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내가 떠나왔던 나의 '직업적 경험' 덕분이었구나 싶다. 부지중에 나는 그런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교 '모험-경험교육 석사과정' 홈페이지. 여러 캠프적 활동과 원형의 실내 모임 사진이 보인다.

 

나는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라는 곳에서 약 8년 간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자로, 사회복지, 상담자로 일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여러 환경의 청소년들을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소 대부분의 활동들은 '캠프정신, 놀이정신'에 입각하여 기획되고 진행되었다. 연구소는 '신체, 정신, 지식'이 조화된 인간상을 꿈꾸는 YMCA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www.ilf.or.kr 

 

 

소위 모범생부터 위기청소년까지. 장애, 다문화, 새터민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의 청소년들을 만났었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의 환경과 조건은 모두 달랐지만, 나는 매순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내'가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흔히 전문가라 말하는 '교육자'가 이끌거나 진행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교육틀 안에서는 '피'교육자, 또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던 청소년들을 직접 '교육과정'에 참여시켰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의 활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 지도자들은 주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함께'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이 활동에 참여한 청소년과 지도자들은 부지중에라도 다음의 주제들을 몸으로, 생활로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확히 아는 것.

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

 

당시에는 충분히 알지 못했을 수 있으나, 지금에 다시 돌아보니 그것이 내가 8년간 연구소에서 경험하고 훈련했던 것이었다. 그 '과정', 그 '삶' 자체가 바로 교육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에서 일할 때, '캠프, 그리고 경험교육'에 대하여 인터뷰한 영상

 

'경험'이란 것은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우리의 삶에 접해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우리가 인지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그 밥이 우리의 뼈와 살, 피가 되어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먹음'을 보다 분명하게 인지하고 자각한다면 우리는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지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관계없다. 매순간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경험들은 그 자체가 부지중에 중요한 '교육적 경험'이 되어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고, 가치를 결정하며, 삶을 이끈다. 때문에 우리가 그 경험을 보다 분명하게 자각할 수 있다면, 스스로 경험을 선택하고, 그 경험을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격과 삶은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우리의 먹음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이를 오래전부터 이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경험을 뜻하는 'Erlibnis'는 비단 교육(Pädagogik)의 현장 뿐 아니라 사회복지, 상담심리, 직업훈련, 문학 및 예술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에게 '경험'은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매우 의미있는 것임을 나는 독일에서의 삶을 통해 조금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경험'의 독일어 어원적을 따져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경험은 Erlebnis라고 쓴다.

'-nis'는 어떤 '성질,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명사를 만드는 후철이다.

Erleb은 Erleben(경험하다, 경험을 통해 알다)라는 동사에서 왔다.

그 중에서 중심적인 의미를 지니는 leben은 '살다, 생활하다'는 뜻이다.

전철 Er-는 뚜렷한 의미는 없지만, 어떤 영향을 받아 생긴 어떠한 것을 나타낸다.

전체를 조합하면, 독일어에서 '경험'이라는 것은 생활, 또는 삶 그 자체이며, 동시에 이런 삶의 과정을 통해 새로이 알게된 어떤 특정한 것을 뜻한다.

 

나는 일상에서 자칫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경험들을 보다 질적인 적으로 만들고 싶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적 주체로 자리매김하여 스스로 경험을 선택하고 유의미한 교육적 경험들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돕고 싶다.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나부터 우선 역량을 키워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 독일에 처음 온 이유였다. 

 

만약 나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하게 여기신다면, 그래서 내게 기회를 주신다면, 나는 그 기회를 얻게 될 것 같다. 아니더라도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은 것이니 후회는 없다.

 

매순간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새로운 '경험'들이 또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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