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교회 한 지체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최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그러나 나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던 유명해진 그 병을 최초로 알린, 그리고 스스로도 그 병으로 죽어간 한 젊은 의사의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문득 내 마음에 '콕' 꽂힌 그의 인생을 조용히 추념하고 싶어 이 글을 남깁니다.

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 1985~2020)의 아내 푸쉐제(付雪洁)가 정리한 남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리원량은 34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리원량은 우한 교회 성도입니다.
[리원량의 마지막 메시지]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그립습니다.
눈송이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캄캄한 밤은 어둡고,
어두움에
집집마다 환하던 등불조차 떠올릴 수 없습니다.
일생 빛을 찾았습니다.
스스로 반짝인다 자랑했습니다.
온힘을 다했지만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가족처럼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단지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동화 속 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왕관을 쓴 치명적인 황후는
반란을 위해 속세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천하는 다시 북적거렸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리라고는.

이후
하늘이 대노하고
산하는 시들고
나는 병들었습니다.
내 가족까지 모두 병들었습니다.
우리는 천 송이 만 송이
눈보라처럼
송이송이 흩날렸습니다.
봄이 오고
강물이 녹으면
가족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
송이 송이 새며
하루 일 분 일 초를
보내리라 여겼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젯밤
눈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비록
인간은 빈한하고
하늘은 따뜻한 곳이더라도 말이죠.
저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올려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나의 기개는
보증서 한 장으로 죽었습니다.
나는 계속
햇볕이 비치듯 살아
생명을 노래하고
소나무 잣나무를
찬미하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제
내 육신은 죽지만
한 줌 재가 되기 전에
조용히
고향의 검은 땅과
하얀 구름을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바람은 마음껏 춤추고
눈은 새하얗게
티 한 점 없습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 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대학 벗꽃 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흰구름 깊은 곳까지
연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만나기를 꿈꿨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태어나면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사람의 물결 속에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네가
평범한 아버지를 원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평민 영웅이 되었구나.
하늘이 곧 밝습니다.
나는 가야합니다.
한 장의 보증서를 들고서,
이 일생
유일한 행낭입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동정하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
나는 당신들이
모두 동트는 새벽을,
내가 산마루 건너기를
기다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합니다.
이번 생애
태산보다 무겁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일한 바램은
얼음과 눈이 녹은 뒤
세상 모든 이가
여전히
대지를 사랑하고
여전히
조국을 믿기를 희망합니다.
봄이 와
벼락이 칠 때
만일 누군가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를 위해
작디작은 비석하나
세워주기 바랍니다!
우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증명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름과 성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
(他爲蒼生說過話).”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젊은 의사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하나님을 갈구할 때, 그 분께서 그를 위로하며 하신 말씀이랍니다.
나는 이 말이 정확히 어떤 말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뜻, 정말 맞다면 나는 과연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눈에 이 땅의 사람들의 가치가 차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노아의 시절, 노아 외에는 한 사람의 의인이 없었던 것처럼. 아브라함이 소돔에서 한 명의 선한 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시대도 그렇다면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이 정녕 그런 뜻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눈에는, 그분의 기준에는 도무지 들어오지 않는 사람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나 역시 그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많은 성경 관련 기록을 남기고, 하나님을 묵상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눈에는 관계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나로부터 임하지 않음을 기억합니다. 구원의 유일하신 주체는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나의 노력으로는 터럭만큼도 구원에 이바지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내게 정말 구원이 임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주님께 매달리는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리라 나는 믿습니다.
한 젊은 의사의 마지막 호흡이 여전히 호흡하고 있는 내 가슴을 때립니다. 천하보다 귀한 당신의 생명이, 또다른 한 세상인 나에게 박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리원량.
당신의 죽음 앞에 짧게 묵념하며, 세상의 마지막 남은 이 한 사람에게까지 전하고자 했던 당신의 목소리에 감사를 전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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