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자신이 처음 사고 싶던 비싼 책가방을 든
친구를 보고 딸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할인마트에서 일하니까 가능하구나!'
*지난 화 보기: [독일생활&유학 #.41] 가난한 유학생의 웃픈 이야기
물론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좀 만 곱씹어보면 좀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딸의 말에 담긴 뉘앙스를 풀어보면,
아래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저 친구 엄마는 비싼 가방 구입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무려 할인마트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딸아이의 그 느낌이란 게
실은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정확하다 싶기도 하다.
내 생각에 아이들은 어른보다
원체 육감이란 것이 강하기 때문에
이따금은 현상에 대한 핵심을
훤씬 간명하게 꿰뚫기도 하는 듯하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그들 중 일부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난민의 이슈가 대두되었다.
이후 난민 중 많은 이들이 유럽으로 방향을 돌리자,
유럽은 직접적으로 난민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안타깝지만, 자국의 치안과 정체성의 보호를 위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난민 수용을 꺼려했다.
본국의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시도한 국가는 독일이 처음이었다.
물론 독일 내부적으로는
당연하게 비판이나 염려가 많았다.
그 당시, 메르켈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국민을 격려하고 설득했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Wir schaffen das zusammen!)
난민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는
세계적 선도국가로서
독일을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현재.
초기의 여러 우려보다 난민들은
나름대로 독일 사회에 잘 정착해나가는 모양새다.
어떤 측면에선 도드라진 인구감소 추세로
미래 생산력 저하 문제를 고민하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 대비책을 마련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일각에선 아직까지도
그들 대부분이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독일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고 느낀 바로는
확실히, 적어도, 경제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상당히 정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경험한 곳은 헤센 뿐이고,
이 같은 평가는 다소간의 지역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느낀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기업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부를 추가로 보전해주는
독일의 사회 시스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높은 세금률과 기업 경쟁력 등을 이유로
이 같은 독일의 사회정책을 비판하는 견해도
단단히 날이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높은 사회적 공감을 통해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그것은 비단 자신이 받을
혜택만 바라보고 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혜택을 위한 노력이었다.
2015년 이후 독일 국민들은 결국
그 혜택의 범위를 세계적 차원으로 넓힌다.
난민에게도 자국 시스템의 이익을 나누게 된 것이다.
물론 독일이 이상적인 국가는 아니다.
독일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
사회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고,
더 높은 수익을 보장받는 직업이 있다.
그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한
치열한 교육적 경쟁도 있으며,
그것을 위한 대학 입학의 욕구도 높은 편이다.
이른바 수단으로써 교육,
비교와 경쟁적 교육이 독일도 있다.
독일도 결국 큰 틀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냥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독일의 장점이고,
그것은 배워볼 만한 정신이다.
스스로 더 좋은 자리를 위한 경쟁을 할 때에도,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함께 생각한다.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타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함께 애쓴다.
임금의 최저 기준을 매년 높여나가고,
적정 근무 시간을 갱신해가는 것이 좋은 예이다.
내 편견 때문이겠지만,
아랍 계통의 사람들이
좋은 차에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신기하다.
그들을 그렇게 정착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 독일이란 나라가,
적어도 그런 부분에선 무척 대단하게 느껴진다.
동네 마트에서 일해서 비싼 가방을 살 수 있다고?
한국적인 사고나 편견으로 바라보면
그저 웃고 넘길 농담 정도로 치부되겠지만...
나는 딸아이가 정확하게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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