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들이 형통할 때는
보통 하나님께 잘 감사하니까,
적어도 '간증'도 많이 하고,
잘 감사하는 '척'하니까,
오늘은 소위
불행한 신앙인들을 위해 글을 쓰려 한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형통이 아닌
실패와 좌절만 맛보는 듯한 그들을 위해...
오늘의 이 글을 바친다.
"똑똑한" 현대인들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 든다.
실수를 막고, 긍정적 요인을 강화하여
성공의 길로 보다 빠르게 안착하려 한다.
성실하고, 바람직한 태도라 생각된다.
"똑똑한" 현대 신앙인들 역시,
사건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 든다.
앞서 모습과 비엿한
지극히 보편적인 "현대적"인 태도이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태도를 신앙적 삶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듯 싶다.
지극히 기독교적인 용어로 설명해 보자.
이런 사람들은 자칫
오늘 내게 주어지는 "형통"을
내 신앙적 열심으로 인한
"보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에 딱! 맞아 떨어지니까.
보통 이런 간증을 한다.
내가 '이러이러'하게
믿고, 고백하고,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오늘 나를 형통하게 하셨다.
옳다.
하나님은 분명,
인생의 선한 행위를 기뻐하지고,
놀라운 상급을 주시는 분이다.
그 자리에서 그들의 간증을 듣는 사람들은,
특히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보통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 내가 부족해서 그렇구나.
내가 저들만 못해서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들구나.'
이런 신앙인들은
오늘 나의 "어려움"을
내 신앙적 열심의 결여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은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고,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를
꾸중하시기도 한다. (히12:5)
그러나 모든 것이
거기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악인도 충분히 형통할 수 있다.
반면, 의인이지만
충분히 고통스런 삶을 사는 이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인생이란 조금은 "운"과 같은 모양이 짙다.
모든 것이 인과관계 법칙에
딱 맞아 떨어지는 법이란 없다.
때문에 우리는 신앙인의 삶을 살 때,
특히 신앙적 간증을 듣고,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고,
그것을 내 인생에 적용할 때,
단호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신앙적인 말과 신앙은 분명히 다르다.
"신앙적인 용어를 사용한다고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예수비전교회 이국진 목사(jjvision.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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