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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소식지 : 편지/소식지 & 기도요청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 (故 권오복)

by 바후르 2021.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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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께서 85세의 일기로 어제 새벽 소천하셨다.

그러나 독일과 한국 시간이 서로 반대였기에, 나는 당시 막내이모로부터 온 임종 전화를 받지 못했다. 

 


 

새벽녘, 여느때와 다름 없는 일상을 위해 침상에서 눈을 떴고, 습관을 따라 핸드폰을 확인했다. 거기엔 어머니로부터 온 문자가 있었다. "故 권오복님..."으로 시작되는, 지인들에게 부고를 전달하기 위한, 조금은 형식적이고 담담한 메시지였다. 실감이 안 난 탓일까? 덩달아 나도 담담해졌다. 슬픔도 없었다. 그냥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난 주,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 시간이 이제 찾아온 것이구나 싶었다.

 

그 때 나는 여전히 어느정도는 잠에 취했을까?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분을 가지고, 이전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의를 따라 격식을 따라 해야 할 일을 찾아 했다. 어머니께 곧장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역시 담담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문자 받았어요. 엄마는 어때요? 괜찮아요?"

 

손자와 딸은 다를 수 있으니, 안부를 겸해 해야할 위로의 말을 건냈다. 바로 그 때 엄마의 목소리 뒤에서부터 작은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적이지는 않았지만, 담담하지만 않은, 충분한 감정이 실린 삼촌의 목소리였다. 

 

"대범아, 기도 좀 해줘. 할아버지 좋은 데 가시라고. 삼촌은 불효자라 기도를 못하겠네."

 

삼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터져나왔다.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갑자기 알수 없는 뜨거움이 눈물샘에서 쏟구쳤다.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이 목구멍에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할아버지는 외롭게 돌아가셨다.

 

다른 가족들 중 그 누구도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요양원 중환자실에서,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촛불이 꺼져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요양원을 싫어하셨다.

 

내가 독일로 떠나올 그 즈음에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사고 이후 급격히 나빠진 할아버지의 건강으로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했고, 할머니만으로는 할아버지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출국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았다. 마지막 인사인줄 몰랐던 마지막 안부를 전했을 때, 할아버지는 내게 나즈막이 말씀하셨다.

 

"거~ 사는 게 다 별로 뜻이 없다. 평생 일을 해서 내 집도 사고, 내 밭도 사도, 거기 있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도 니는 잘 살거라."

 

내 마지막 기억 속 할아버지는 참 외로워보였다. 그 자조 섞인 할아버지의 한숨이 귀에 맴돌았다. 그게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외로웠던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외롭게 가신 것 같았다.

 


 

문득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도 외로우실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형제 중 유일하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셨더랬다. 문득 혹시 지금도 아무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계시면 어떻게하나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워낙 친절하신 분이고, 호인(好人)인터라 곧잘 다른 이를 사귀고 잘 지내시겠으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던 할아버지가 외롭게 가신 뒤, 어쩌면 지금도 외로우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조금 마르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2일) 오전, 한국에서는 할아버지 입관식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할아버지의 영혼은 하늘에 계실 것이지만, 관에 담긴 할아버지의 육신은 영면할 이 곳 땅으로 내일이면 떠날 것이다. 삼일장.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다가가고 있는데, 나는 할아버지를 제대로 보내 드리고 있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무슨 마음인 줄 몰라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정리하기도 벅차다. 여기엔 나와 같이 왠지 모를 흐느낌을 함께 해줄 사람이 없다. 함께 할아버지를 추억할 사람이 없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둘째가 학교에 입학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축하자리에 누가 되지 않으려, 늘 그분이 그러셨던 조용히 그자리를 피해 가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나의 아이들의 첫출발을 조금은 더 축하하기 위해 최대한 나의 감정을 절제하는 중이다. 최대한 울음을 참아가며, 조용히 혼자서 컴퓨터에 저장되 있는 그 분의 사진을 찾았다. 마당에 핀 하얀 장미를 꺽어 할아버지의 사진 옆에 놓았다. 십자가 곁에 초를 두고 불을 키웠다. 사진 앞에 성경을 놓아두고 요한복음과 로마서를 읽어본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정말 할아버지를 제대로 보내드리고 있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지만, 어렸을 적 주말마다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던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는 평생 철도청 선로반에서 고된 일을 하셨다. 그 덕에 할아버지의 손마디는 거칠어졌고, 팔은 단단한 근육이 생겼다. 그 딱딱한 손으로 우리 두 형제의 등을 밀어주셨다. 어찌나 따갑고 아프던지, 그땐 그게 참 힘들었다.뜨거운 탕에 들어갈 때도, 나는 일찍 나오고 싶었었는데, 할아버지는 나를 잡아 탕으로 이끌었다. 오래 몸을 담가야 때가 잘 밀린다며 시간을 정해놓고 최대한 오래 탕에 머물게 하셨다. 그 때 나는 그것도 참 힘들었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 목욕탕을 생각하며, 오늘은 오랜만에 욕탕에서 목욕을 해야겠다 싶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곤 집안 욕실에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내가 커서 견딜만 한 것인지,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그 때의 그 뜨거움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뜨거운 물을 얼마쯤 받아놓고 들어간 물 속에서 울었다.

 

나는 이것이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니?"

 

떨어져 있기에 함께 할 수 없는 가족들에게, 나도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한 사람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증명하 듯이, 하루에 한 번씩 문자와 전화를 드릴 때, 어머니가 그렇게 물어봤다.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 눈이 붉어진 것을 보고 할머니가 걱정하셨던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 때도 나는 울면서 대답했다. 정말 몰라서 대답을 못했다. 왜 우는지 나도 모르겠다. 떨어져 있어서 더 감정적이 된 것인건가?

 

사실 나는 솔직히 할아버지와는 추억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나는 할머니와는 깊은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와는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힘들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늘 우리 곁에 계셨었지만, 그 시절 여느 경상도 어르신들이 그러시듯 평소에는 대체로 무뚝뚝했다. 다정한 분이신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먼저 말씀을 하셨던 분은 아니셨다. 그런데도 그것이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냥 내 할아버지시기 때문에, 그냥 그 사실로도 충분히 끈끈했던 모양이다. 

 


 

"우리 레오"

 

할아버지는 어린 나를 이런 별명으로 불르곤 했다. 하얀 아기 사자 레오는 내가 어린시절 유행했던 만화영화 주인공이었다. 내가 호랑이 띠라서 그랬을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불렀다.

 

그러고나니 알게되는 게 생겼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 때 나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셨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지루해하는 뉴스를 좋아했을 할아버지는, 당신에겐 유치했을 만화영화를 보셨지 싶다. 손자들이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하품을 참아가며, 함께 그 만화를 보았겠지. 그리고 그 만화 주인공 '레오'를 알게 되셨을 것이다.

 

무뚝뚝한 그 어른은 이미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전해주고 계셨음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너희 할아버지는 이제 본향(本鄕)으로 가셨으니 너무 걱정 말아라."

 

입관을 위해 겨우 장례식장에 오신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 할머니께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겨우 힘을 짜내시는 할머니를 보니 다시 눈물이 났다.

 

세월이 흐른다.

한 세대가 떠난다.

똑같은 하늘을 머리에 함께 지고, 같은 땅에 함께 발을 내딛던, 크고 단단한 나의 어른들이 조용히 그렇게 저물어 가시고 계신다. 나의 어린 시절도 그 어른들과 함께, 바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그 분들께서 이 땅에 머무셨던 흔적들은, 나의 어른들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게 될 것이다. 먼 훗날 언젠가, 내 기억속에 희미하게 나마 남아있을 그 추억마저 흐릿해지면, 마지막 그분들의 흔적조차 이 땅을 떠날 터이다.

 

그래.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상관없이. 나는 이미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중이다. 

 

조용하고, 선하셨던, 나의 할아버지.

이 땅에서 당신께서 늘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또 조용하고, 순하게, 그렇게 가셨다.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조금은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다.

 

아! 참! 그러고보니 하나 생각났다.

 

<아빠! 그러고보니 거기 아빠가 있었네! 아빠가 가야겠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혼자 계시면, 그래도 아빠는 할아버지 사위니까, 할아버지랑 잘 아는 사이니까,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가면 되겠다. 지금 가봐요!>

 

이게 들릴 지, 아니 들릴 지 모르겠지만. 30년 전 먼저 하늘로 떠난 내 아빠에게 부탁해야겠다  싶었다. 들렸으면 좋겠다, 닿았으면 좋겠다. 아빠도, 할아버지도 조금은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 

 

할머니 말씀대로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에 도착하셨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마 할아버지가 아는 많은 분들이 이미 그 땅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실 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곳으로 가겠지. 지금은 내 곁에 있는 나의 여러 가족들도, 자신의 때를 따라 그곳으로 가겠지. 언젠가 우린 모두 그곳에서 함께 만날 것이다. 꼭, 모두, 함께, 그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가족들에게 대한 기도가 유난히 간절해 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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