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예전 어느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 나는 한 어른을 모시고,
조안면 두물머리 근처의 한 카페에 들렀다.
따끈한 빵과 향긋한 커피를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그 어른께 언젠가 독일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의 나는 내 미래를 몰랐다.
실상 깊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치열한 준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특별하지도 않을
그저 그런 여러 소망 중 하나를 말한 것 뿐이었다.
언제 독일로 떠나가게 될 지,
독일의 삶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그 어떤 것도 진지하게 가늠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독일에 살고 있다.
세상에 내가 독일에 있다.
내가 독일에 있다니...
벌써 꼬박 2년을 넘기고 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꼭 그 정도쯤 되는 시간이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현실이라
별 생각을 못했었는데.
문득 그 때를 생각하면,
믿겨지지 않는다.
세상에 독일이라니!
ABC(아베체)도 채 모르고,
그냥 꿈 같은 소리만 해대던
내가 독일이라니!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니!
심지어 익숙해지고 있다니!
이제 꼭 2년이 지나가고 있다.
뭣도 모르고 '독일독일' 하던 때는 지나간다.
하룻강아지가 태를 벗으려 하니, 무서운 게 생긴다.
지난 2년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도움들을 받아왔던가?
아무것도 몰랐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길.
하룻강아지라
무서운 게 무엇인지
미처 몰라 왔었던 길.
조금 더 보이니
무섭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결하려니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차라리 하룻강아지에 머무르자.
어중간이 알게되니
겁만 날 뿐, 이도저도 못한다.
바늘 귀만 뚫고 나온 낙타같은 삶이었는데,
앞으로도 바늘 귀만 뚫고 지나 가겠지, 뭐.
아무 것도 모르던 내가 독일에 있다.
무엇을 조금 더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싶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독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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