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귀한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Tabor 신학대학교의
'김나함' 교수님도 그중 한 분이다.
그리고 지난 성탄절에는 교수님을 통해
자매이자 역시 같은 신학자인
김미함 교수님을 소개받았다.
지난 시간 김나함 교수님과 나눈
한 가지 주제를 정리했고,
오늘은 김미함 교수님과 대화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정리하려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시는가?"
(김미함 교수님과 대화)
시대가 악해진다고 말하기도 하고,
신앙인답지 않은 기독교인도 많다고 하자만,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분의 방법대로 따르고 싶어 하는 이도 많다.
어느 누구나 크든 작든
삶에서 자신을 차갑게 때리는
파도가 일렁이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한국교회에서는 주로
'시련', 혹은 '시험'이라 말한다.
또는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가 어떤 '어려움'으로 허덕일 때,
가장 흔한 위로 혹은 신앙적 조언은
그 시험을 '극복'하길 기원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어려움은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 된다.
이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할 것이라 여긴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거나,
신앙적인 방법으로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어려움, 시험을 겪는 기독교인들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끝은 두 가지 정도이다.
계속 어려움을 당하지만 스스로 참고 버티는 것,
혹은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한 뒤
시험을 극복하지 못한 자신을 정죄하는 것.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
오늘 교회에서 교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이것 외에 특별히 다른 것이 없다.
물론 나는 이러한 시험을 인내하는 것,
그 자체의 의미를 폄훼하고 싶진 않다.
기독교의 궁극적 가치와 상징이
'예수의 십자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고통의 인내와 극복에만
기독교의 모든 방법론이 귀결된다면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는
고통스러운 '가학'의 종교가 아닐까?
예수는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주셨는데
어쩌면 예수께서 목숨 바쳐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자유를
우리 스스로 묵살하고
속박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성탄절에서도 비슷한 현실의 어려움에
몸부림치는 한 예수의 지체를 만났다.
매번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예수의 시험이라 여기며
극복하려 애썼다고 했다.
이 자체는 물론 귀한 태도라 생각한다.
그 또한 개인의 신앙성장도 있었다 고백했다.
그러나 결국 너무 힘들고, 평안하지 못했기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경우를 보자.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가?
아니, 좁혀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옳은 방법일까?
그는 그 자리에서 더 버티면서 인내하여야 했을까?
그 인내와 고통 속에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만 했을까?
반대로 그 자리를 결국에는 포기해야 했던
그 지체의 선택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실까?
그를 다시 닦달하실까? 정죄하실까?
이 말을 듣던 김미함 교수님의 말씀은
적어도 나 개인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에 관하여
좋은 이정표를 제시해주었다.
"고통이든 평안이든 어떤 것이든
네가 '임의로' 선택하라.
다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방향'으로 하라."
그렇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그 자체로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자라는 방향이라면
어떤 것이든 주님 안에서는
매 한 가지인 것이다.
루터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앙은 가장 밝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하라."
신앙의 가장 밝은 부분
즉,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어디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 분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족한 것이다.
고통을 인내하며, 극복하는 것도 귀하다.
그 자리를 포기하거나
떠나는 것도 정죄받을 일이 아니다.
아니 그 또한 귀한 선택이다.
하나님은 평안을 주시는 분이다.
평안과 잠잠함은 그분의 성품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만을 바라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바라시니,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공동번역 / 전도서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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