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나는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어제저녁부터 독일의 감염자 수가 한국보다 많아졌다. 3월 18일 현재 독일 감염자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이곳 헤센 주도 모든 학교와 유치원이 6주간 휴교에 들어갔다. 오늘부터는 마트, 약국 등 생활 혹은 방역 필수시설을 제외하고선 각종 매장의 폐쇄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국가들의 문제로 치부되었던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어버렸다.
전 세계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의 악독성은 치사율이 아닌 전염력에 있다.
사람들은 곳곳에 퍼져 있을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실제로 닥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공포가 전세계의 모든 공간을 침투하여 이미 가득히 차올랐다.
“더 강한 전염병 몰려올 것···이대로는 또 당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주목받는 책이 있다. 2017년 발간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콰먼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다. 책의 번역자 강병철씨(53)는 의사다. 의대를 졸
n.news.naver.com
세계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은 이제 거의 매년 한 번씩 이슈가 되어가는 추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후 코로나보다 더 큰 질병의 발생 가능성까지도 강하게 예상하고 있다. 그런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으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단일 바이러스의 맹독성만 보면
그리 심각하지 않은 편인
코로나 바이러스만으로도
전 세계가 이런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이후에 다른 상황이 발생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은 각자 지닌 인간적, 태생적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는 좀 더 이성적인 인물일 줄 알았는데,
실은 그토록 혐오했던 비상식적 인물들과 다를 바 없이
이기적이고 무력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당연하게 의심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힐난하기 쉬울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나의 안위를 위해 어쩌면 그들의 안위를 모른 척할 수도 있고,
친구를, 가족을 어려움 한가운데 두고서도 쉽게 등을 돌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말을 기록하는 나조차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인간의 한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가 이전 어떤 것보다 무서운 것은 세계가 동시에 비슷한 두려움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려움의 경험은 이후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후 세계가 비슷한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다를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걱정이 된다. 이후 이와 비슷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야 마는 그런 처참한 순간이 오면 어쩌나 두려워진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 등을 돌리고 선 사람들 중 혹시 내가 끼어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솔직히 다른 이들보다는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
집 뒤로는 넓은 평야와 숲이 있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산한 시골에 살고 있다 보니 솔직히 크게 답답한 것이 없다. 도리어 일면은 봄이 오고 있는 길목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여유롭고 잠잠하기까지 하다. 나는 매일 오전 아이들과 숲길로 들길로 산책을 가곤 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문득 아래 성경구절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잘의 아들인
비느하스 사제를 보아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진노를 거두었다.
너희 가운데에서
나의 질투를 같이 느낀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내키는 대로 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다 없애버렸을 것이다."
(민25:11~12)
그 옛날 광야에서 무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죽였던 전염병이 있었다. 그 전염병을 그치게 했던 제사장 엘르아살의 이야기였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동일하게 가지고, 하나님의 슬픔과 질투를 있는 그대로 느꼈던 엘르아살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염병을 멈추셨다. 문득 지금 이 전염병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동일하게 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평안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이곳에 보내신 것이 아닐 것이다. 나 혼자 안전하라고 이 곳에 두신 것은 아닐 것이다. 쉽게 놓아버렸던 한가지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기도하길 원하심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순간 하나님이 지금 이 세상에 느끼고 계실 아픔, 분노, 상처를 조금만이라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내 어려움만을 그 분께 소리쳐 아뢰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언제 하나님의 아픔을 동일하게 느껴본 적이 있을까?
나는 하나님께 매번 받기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찰나의 순간이라도 하나님 대신에 울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하나님 대신 아파할 수 있다면, 하나님 대신 분노할 수 있다면, 하나님 대신 질투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혹시 그분께서 아주 먼지만큼이라도 위로를 얻으실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이 양자 삼아주신 아들인데, 그동안 아들이라 스스로 말하면서도 아버지의 마음 따위야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기도해야겠다. 부족하겠지만.
'큐티 : 성경 : 말씀 : 묵상 > 큐티 : 성경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사람의 '계책'을 갖느니, 하나님을 바라보는 '막막함'을 갖겠다 (0) | 2020.04.07 |
---|---|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코로나'가 멈추어 놓은 세상에서... (0) | 2020.04.01 |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신앙의 여정 - 어둔 밤 운전하는 것 같이 (0) | 2020.03.13 |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꿈에서 한 묵상 (0) | 2020.03.13 |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매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0) | 2020.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