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라는 곳에서 2012년 2월 부터 2019년 4월까지 일을 했다.
연구소는 1992년에 설립되었다. 연구소는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고, 학교, 가정, 이웃, 나라, 세계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공동체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노력하는 곳이었다. 단순한 일터라기보다 이런 비전에 동의하는 일꾼들을 모으고 훈련하고 연합하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했다.
많은 것을 배웠고 여러 생각들을 깊이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현재 독일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며, 준비하게 만든 것도 분명한 연구소의 덕이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쉽게 가질 수 없었을, 좋은 단체를 만나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문득문득 그 때의 경험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놀이와 예술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에 실린 글을 보게 되었다. 교육부의 공식 블로그에 한 선생님께서 2017년에 올리신 연수 보고서였다.
<놀이와 예술을 통한 창의인성교육>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 분께서 참여하신 프로그램의 강사가 바로 나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16년 10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창의인성교육 포럼 중 한 꼭지인 <예술놀이 프로그램> 분과의 소집단 교육을 진행했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감사했다.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내가 알고 느낀 것에 공감해주고, 그런 정신을 자신의 자리에서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연구소에서 경험들은 앞으로 진행될 내 인생을 만들어갈 고민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시작이 있었고 과정을 이어가는 중이라면, 내가 인정하든 아니 하든, 나의 고민과 생각들은 매일매일 더 진전되고 깊어지고 있는 것일테다.
참 귀한 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하나님과 연구소,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감사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어느 곳에 있던, 어떤 일을 하던.
*아래: 교육부 공식 블로그에 실린 이진화 선생님의 연수 보고서 원문
몇 년 전,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창의·인성교육 현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공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관료적인 학교의 구조와 획일적인 수업방식에 서서히 재미를 잃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좀 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시도해본 방법들도 잘 되지 않아 더욱 답답한 상황이었다. 연수를 들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같이 연수 공문들을 찾아보던 그 와중에 나의 눈에 띈 하나의 공문이 있었다. 그때가 창의·인성교육 현장포럼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평상시에 접하기 힘든 대안학교를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먼 길을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지만,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또 한 번 갈아타고 그리고 택시를 타고 한참 가서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뭣하러 여기까지 왔대?” 그때는 그 말에 별생각 없이 웃으면서 “그러게요.” 하고 넘겨버렸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식어버린 나의 열정을 되찾아 줄 무언가를 찾아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끌렸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첫 경험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만남 즐기면서 배운다는 것 |
교육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게 된 특별한 시간이 되었던 그날 이후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인연이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꾸 미뤄지고 다시 만날 기회가 멀어져 가던 중에 우연히 우리 지역, 그것도 집 근처 연수원에서 포럼이 진행된다는 안내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4개의 워크숍 중 ‘창의역량 개발을 위한 놀이와 연극’이라는 제목이 나의 마음을 또다시 설레게 만들었다. 놀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직경력이 10년이 넘어가면서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는 즐기면서 배우는 경험이 훨씬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놀이와 연극은 최근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첫 만남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이렇게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오전 주제 강연을 듣고, 정말 맛있고 푸짐한 점심을 먹은 후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선택한 워크숍이 준비된 강의실로 향했다. 낯선 사람들을 볼 생각에 살짝 긴장하며 강의실에 들어서는데,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의 한 남성이 친근한 말투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 오늘 강의를 하게 된 정대범입니다.”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였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수업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높아졌다. 매일 만나는 많은 학생들에게 늘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놀이와 연극을 통한 즐거운 수업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선생님의 표정이나 말투에 민감한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밝은 모습으로 첫 인사를 건넨다면 내가 강사님께 느꼈던 것처럼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곳에는 이미 먼저 와 계신 두 분의 선생님이 있었다. 사실 더 모일 줄 알았는데, 그날은 특별하게도 세 명이서 오붓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예상보다 적은 숫자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솔직히 더 좋았다. 나중에 강사님도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가는 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였다.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나 이외 두 분의 선생님은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고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학생들과 재미있게 소통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하셔서 마치 신규 선생님을 보는 것 같았다.
놀이의 세계는 따로 존재한다 |
놀이와 연극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서 그런지 말투와 표정이 살아있고, 활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덩달아 나도 고조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준비할 때 간단한 빙고 놀이부터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역할 놀이까지 학생들이 45분의 수업시간 중에 꼭 한 가지씩은 놀이로 활동할 수 있게 수업내용을 연구하신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에겐 큰 자극이 되었다. 저런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배움이 참으로 즐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수업시간에 간혹 수업내용을 연결시켜 상황극을 만들어 보고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영 어색해 하고 잘 하지 않으려고 하여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강사님은 놀이에도 순서가 있어서 상황극과 같은 놀이는 학생들 사이에 관계가 잘 형성될 수 있게끔 먼저 가볍게 친밀감을 쌓는 놀이를 한 이후에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강사님은 이런 질문도 하셨다. “놀이의 세계가 따로 존재할까요?” 나는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현실 속에서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실제로 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놀이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사님은 “놀이의 세계는 따로 존재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현실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놀이를 하는 그 아이들은 마치 그 공간에 자기들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놀이에 몰입한 아이들을 옆에서 불러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신나게 놀았을 때 그것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하셨다. 본래 놀이의 목적이라는 것은 없지만, 그 안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놀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놀이에서의 경험이 현실 속에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놀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본 것이 처음이어서 조금 생소했지만 놀이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선생님들과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나눔의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강사님께서는 쉴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놀이를 시작하였는데 사실 가장 궁금하고 기다려졌던 시간이었다. 숫자가 적었던 관계로 놀이 하나가 길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으나, 대신 많은 종류의 놀이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고 놀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덧붙여 보려고 한다. 맨 처음에 했던 놀이는‘종이테이프 붙이기’ 였다.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놀이 1. <종이테이프 붙이기>
- 1.20cm 정도의 길이로 자른 종이테이프를 나누어 준다.
- 2.종이테이프를 5~7조각 정도로 찢어 손가락에 붙여 놓는다.
- 3.아무한테나 가서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한다.
(예: 안녕하세요. 저는 000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 4.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답을 한 후, 상대방에게 같은 방법으로 인사하고 질문한다.
- 5.서로 소개가 끝난 후, 가위바위보를 한다.
- 6.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얼굴에 종이테이프 조각을 붙인다.
- 7.다른 사람을 만나 같은 방식으로 놀이를 하면서, 자기 손가락에 붙어 있는 종이테이프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계속한다.
이 놀이는 자발성을 촉진하는 놀이로 학기 초 학생들이 처음 만나 사귈 때 활용하면 좋은 놀이이다. 종이테이프를 없애기 위해서는 놀이를 할 상대방을 만나야 하므로 어색한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서로를 찾아다니게 된다. 만나서 자기 소개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므로 학기 초에 공동체 안에서 친밀감을 형성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수가 끝난 후, 학교로 돌아가 실제로 이 놀이를 진행해보았는데 학생들이 많으니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이 과정이 매우 활동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과정2에서 조각 수를 정해주지 않고 찢고 싶은 만큼 찢을 수 있게 하면, 나중에 놀이방법을 들으면서 종이를 많이 찢었던 사람은 후회하기도 하고 종이를 적게 찢었던 사람들은 환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다른 사람의 얼굴에 종이테이프를 붙일 때, 점점 우스워 보이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이 나게 되며 어떻게 하면 더욱 우습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나름의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강사님이 준 팁을 활용해서 얼굴에 종이테이프가 제일 많이 붙여진 사람과 제일 적게 붙여진 사람을 불러내 가위바위보를 시켜진 사람의 얼굴에 모든 학생들의 종이테이프를 붙이게 했더니 그것도 재미있는 마무리가 되었다. 학생들이 매우 즐거워했던 성공적인 놀이 경험이었으니, 이 책을 보는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학기 초에 꼭 한번 시도 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다음 놀이는 ‘내가 누구입니까’라는 놀이이다.
놀이 2. <내가 누구입니까>
- 1.동그랗게 둘러앉는다.
- 2.포스트잇에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사람 한 명의 이름을 쓴다.
- 3.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옆 사람의 등이나 이마에 붙인다.
(옆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 4.내 등이나 이마에 붙여진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옆 사람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때, 상대방이 예 또는 아니오 둘 중 하나로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 5.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질문하여 내가 누구인지 추측해본다.
- 6.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놀이가 끝난다.
이 놀이 역시 자발성을 촉진하는 놀이로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정리한다거나 과학에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활용이 가능한 간단하면서 효과가 좋은 놀이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찾아 질문을 해야 하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 또는 ‘아니오’ 로만 들을 수밖에 없으니 질문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고 그 내용을 다듬어서 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상해보고 연결 짓는 사고체계가 발달하게 된다. 실제로 해보면 질문이 선뜻 나오는 것이 힘든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질문을 하면서 나를 찾는 범위를 좁혀나가는 가지치기를 통해 스릴감을 맛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지식들이 방출하게 된다.
학생들과 같이 해보았더니, 유명한 사람이라는 주제가 모든 학생들에게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점이 보였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게임 속 인물들을 적는 경우가 있어 여학생들이 알아맞히기 힘들어하였다. 학생들에게 적용할 때는 광범위하고 불확실한 주제보다는 좁은 범위에서 확실한 주제를 정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를 하게 되면 가끔씩 놀이의 규칙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놀이를 방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 놀이에서도 그런 우려가 생겼다. 질문하기를 귀찮아하면서 종이를 떼어서 본다거나 열심히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아이들에게 대뜸 정답을 알려주는 아이들이 있을 때 놀이의 흥이 깨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강사님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규칙을 안내하고 지킬 것을 부탁하는 시간을 가져야지만 혹시 놀이 중에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관리하고 지도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규칙을 지켜 놀이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쩌다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상황 또한 놀이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놀이에 접근하기가 쉬워진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이런 방해되는 아이들에 대한 우려로 놀이를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그 마음을 조금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 놀이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놀이이며 교과와 관련된 내용으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많은 선생님들이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놀이 2개를 더 소개하자면...
놀이 3. <알쏭달쏭>
- 1.모둠끼리 모여 앉는다. (모둠에 펜을 하나씩만 준다.)
- 2.각 모둠에 빈칸이 있는 단어나 부사가 적혀있는 종이를 나누어준다.
(예: ㅇ렁ㅇ, ㅇ글ㅇ글, 싱ㅇ생ㅇ, ㅇㅇ니, ㅇㅇ개, ㅇㅇ시대, ㅇ이ㅇ이 등)
- 3.일정시간 동안 빈칸에 알맞은 말을 넣어 단어를 완성하게 한다.
- 4.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과 함께 정답을 맞추어 본다.
놀이에는 목적이 없으므로 신나게 놀면 그만이다. 이 놀이에는 정답이 없다. 모둠원들끼리 협동하여 하나의 답을 완성시키면 된다. 선생님이 생각해 둔 단어가 있으나 학생들의 답을 들어보고 참신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답으로 정할 수 있다. 학생들이 생각한 기발한 단어들을 듣는 재미와 그때그때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언제든지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놀이이다. 교과내용에서 나오는 용어를 기억하고 정리하는 마무리 수업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놀이이다.
중학교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약간 난이도를 높여 초성만 주고 알아맞히게 할 수도 있다. 나는 수업 시작하기 전 학습목표를 알쏭달쏭 단어들을 조합하여 칠판에 적어놓고 알아맞힐 수 있도록 하였더니, 내가 시키지 않아도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펴서 오늘 배울 부분을 찾아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업 시작 전에 학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도 효과가 있으며 아주 간단한 준비만 하면 되는 놀이이므로 한번 꼭 시도해보시기를 바란다.
놀이 4. <몸으로 말해요>
- 1.선생님이 준비한 문장을 뽑는다.
(예: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난 널 원해, 내 눈을 바라봐 너는 건강해지고, 나는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 아저씨 여기 단무지 더 주세요 등)
- 2.소리내지 않고 몸으로 표현한다.
- 3.같은 모둠원들이 그것을 보고 문장으로 말한다.
- 4.뽑은 문장과 일치하면 성공!
이 놀이는 표현력을 기르고 창의성을 발달시키는 데 굉장히 효과적인 놀이이다. 학생들이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인식할 수 있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학기 초에 활용하기 보다는 학생들 사이에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시도해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놀이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혼자서 준비하기가 힘들다면 사전에 아이들에게 직접 문장을 만들어 보게 하는 시간을 주어 아이들이 만든 문장을 활용하는 것도 놀이를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몸을 쓰게 하는 놀이를 선호하는 편인데 몸을 움직이면서 사고의 틀이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움직여줘야 뭔가 제대로 놀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직접 해보면 의외의 동작들이 나와 굉장히 재미있고, 모둠원들 간의 협동심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성공했을 때 뿌듯함과 희열을 강하게 느끼는 모습들이 보여 즐겁다.
두 유희의 인간, 창조활동으로 연결돼 |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라는 말이 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유희의 인간을 나타내는 용어인데,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는 점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이다. 문화사를 연구한 호이징가에 의해서 창출된 개념으로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 활동을 전개하는 학문, 예술 등이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놀이를 직접 하면서 내가 느낀 좋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각자 다른 사람들이 놀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놀이에 빠져 서로 협동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함께 웃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느껴지면서 일치와 소속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 하나는 나이를 잊게 해준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일단 놀이를 시작하게 되면 표정이 밝아지면서 작은 것에도 깔깔거리면 웃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거기서 만난 선배 선생님들의 모습에서도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행복한 표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놀이가 가진 매력적인 점인 것 같다. 학생들이 놀이할 때 보여주는 집중력은 엄청나다.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경청하는 모습이나 놀이를 완성하기 위해서 머리와 몸을 쓰는 것을 보면 놀이를 통해서 배우는 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것임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놀이를 통해 변한다. 놀이하는 그 안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놀이 자체도 우리 자신들도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될 수 있는 공간이 놀이이다. 끊임없이 앉아서 일만 하는 것보다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처럼...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도약이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은 놀이를 통한 정신적인 창조활동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는 아이들과 더욱 신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강사님의 지독한(?) 열정으로 우리는 쉬는 시간에도 경험한 놀이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다른 선생님들도 놀이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열성적인 분위기여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따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배우고 즐길 수 있었다. 여기서 소개한 것 이외에도 여러 놀이를 더 경험해 볼 수 있었고, 강사님이 근무하고 계신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에서 발간한 놀이에 관련된 여러 종의 책들을 강사님이 모두 가지고 와서 볼 수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정말 1년 365일 동안 한 개씩 빠짐없이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많은 종류의 놀이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가면 다양한 놀이 영상 자료들과 현장포럼 사례집<수업을 바꾸는 토요일의 기적> (247~258페이지) 만나볼 수 있다고 안내해주셔서 마치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느낌이었다.
놀이를 정리하는 글을 쓰다 보니, 그 때의 신나는 감정이 다시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학생들이 훗날 내 수업을 생각할 때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방학엔 놀이를 활용한 수업을 좀더 많이 구상해 볼 생각이다. 과학창의재단의 연수는 창의, 인성교육이라는 말에 걸맞게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도 다시 한 번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만날 때마다 희망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이 연수와의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연수에 참여하게 되는 그 날까지 연수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
글_ 이 진 화 (두암중학교)
출처_ 크레존
[출처] 롤플레이 기법을 활용한 즉흥극 만들기 / 두암중학교|작성자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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