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살다 보니,
특히 오늘과 같이
기독교인의 모본(模本)이 없어진
형편없는 시대를 살고 있자니,
성경은 나에게
귀한 이정표가 되어주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부담을 지어주곤 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온전하지 못한 나는,
온전함 비슷함에도 다다르지 못한
오늘의 기독교는,
이 말씀을 어찌 받아야 하는가?
이따금씩 내 머릿속에는
이와 비엿한 질문들이 채워졌다.
그 때마다 씻기 어려운
죄책감이 느껴졌다.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많이 외고,
듣기 좋은 말씀이지만,
따지고 들면
이 말씀 역시 쉽지만은 않다.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귀한 질문일지 모르고,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이 질문에 스스로
떳떳해야 할 것 같지만,
솔직히 이 질문이 싫었다.
'그렇다!'
당당하게,
혹은 쉽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월권처럼 생각되곤 했다.
도리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
능히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 3:17~18)
라고 말하는 편이
내 신앙에 가까웠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웠다.
졸업 후 직장에서는
교육철학을 조금이나마 경험했다.
현대 성장 심리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교육의 지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온전한 인간으로의 계발"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온전한 인간>은
완성된 인간이 아니다.
그 온전함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인간>이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으로 빗대 보면...
Lv.100은 온전한 인간,
Lv.1은 형편없는 인간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
클랜에 속해있는 모든 인간들,
쪼랩이든, 만랩이든
그것을 추구하는 모든 유저들이
곧 온전한 인간인 것이다.
문득 편안해진다.
주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이
내 행위의 어떠함에 집중하신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평안해진다.
온전함을 잃지 말자.
온전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자.
안 이루어진다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자.
어쩌면
나의 주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바람이
바로 그것일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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