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불확실&믿음 #.01: 그동안의 믿음이 모두 무너졌을 때... (ft. 엘리사, 수넴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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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불확실&믿음 #.01: 그동안의 믿음이 모두 무너졌을 때... (ft. 엘리사, 수넴여인)

by 독/한/아빠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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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넴의 여인이)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4장 25~31절)



수넴의 한 여인의 아들을 엘리사가 살린 이야기는 유명한 예화이다. 그의 놀라운 능력과 영감에 대한 증거로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는 결코 모든 것을 알아서 그런 일을 행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엘리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그는 오늘 이 여인이 왜 자신에게 온 지도 알지 못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도 알지 못했다.

여인을 통해 일의 전말을 들은 후에, 그는 (아마도 이전에는 효과가 있었을 법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었던 방법을 생각해 내어 자신의 몸종(Diener)에게 알려준다. 그 방법이란 '자신의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는 것'이었다.

아마 그의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와 같았을 것이다. 즉,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능력을 발하시는 통로와 같았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러하셨기에, 그는 이번에도 그렇게 될 줄로 믿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실패했다.
아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늘 자신이 믿었던 방법이 쪼개질 때, 비로소 자신의 믿음이 '실제' 어느 수준에 있는지 드러난다. 말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보여지는 '믿음'.

아마 엘리야에게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죽이시기로 결정하였는지, 자신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에 빠졌을 지 모른다. 고민하고 답답해 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는 '그래도 엘리사가 누군데,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목도했던 이가 아닌가?'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직접적인 하나님의 산 증거를 맛보았다면, 그런 의심은 아니할 거라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제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와 기적들은, 오늘의 자신의 믿음을 담보하지 못한다.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바로 그 직후에 이스라엘은 모세를 죽이고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었다.
엘리사의 스승이자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엘리야 역시 바알의 제사장 450명을 쳐죽인 기적같은 사건을 만들어 낸 직후에 '나는 이전의 사람들만 못합니다. 나를 죽여주소서.'라고 말하며 깊은 혼돈과 의심, 좌절 속에 파뭍혔었다.

오늘 엘리사 역시 매일반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이제 그의 '진짜' 믿음이 드러날 차례이다. 그는 좌절 속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그 이후의 결과를 아는 우리들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당연히 하나님을 쫓아야, 하나님께 다시 기도해야지.' 그러나 실제 그런 당혹스런 현실에 직면한 사람들은 그런 결정을 담담하게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 그동안 믿었던 것이 모두 무너질 때, 비로소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크기가 드러나는 법이다.

 

Abb. 4 Elisa erweckt den Sohn der Sunamiterin (Frederick Leighton, 19. Jh.). / 출처: bibelwissenschaft.de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열왕기하 4장 33~35절)

 


(이제부터는 어디까지나 상당부분 내 상상이지만, 아마도...)

엘리사, 그 또한 역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을 것이다.

그저 아이의 몸에 쓰러지듯 엎드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아이의 몸이 차차 따뜻해졌으나, 숨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온기가 자기 몸으로 데워진 것인지 아이의 체온이 돌아온 것인지 계속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아래 방으로 내려가 거실을 맴돌며, 당혹스런 마음을, 사라지는 자신의 믿음을 추스려야 했지 싶다. 계속되는 무응답과 실패에 어찌할 바 몰라 한동안 더 이리저리 서싱였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죽으면 죽으리라.'

반쯤은 포기한 마음으로 다시 올라가 '이전과 다름없이' 기도했다. 이쯤되면 자신에게서는 신뢰할 만한 것이 어떤 것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된다.

그 때, 바로 그 때였다.
하나님의 일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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