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은혜를 잊지마라! (feat. 람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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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은혜를 잊지마라! (feat. 람세스)

by 독/한/아빠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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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날짜: 2019년 8월 21일(수)

묵상 본문: 출애굽기 1장~2장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출1:8)

 


 

요셉이 이집트로 들어간 때

너무나 오래 전 역사이기에

정확히 추측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학자와 성서학자들이

연구한 가설들이 존재한다.

기원전 18세기 말, 제12왕조 즈음이라는 가설이

나에겐 가장 설득력 있었다.

 

어쨌든 요셉은 이집트에서 고위관료가 되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의 원가족도 이집트로 들어왔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이집트의 변방에 거주하고 있는

히브리 민족이 무척 많음을 보았다.

그는 굉장히 놀랐을 뿐 아니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내 히브리인들을 강제노역을 지우기 시작한다.

국가의 재산을 모으는 창고인 비돔과

거대한 궁전인 라암셋을 건설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인들에게 무시당했다.

그러나 그들이 천히 여김을 받았어도

자유가 억압받는 노예는 아니었다.

 

일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500년 간 노예생활을 했다는 말은 맞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일반 평민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라암셋'의 건설시기 즈음부터 노예가 된 것 같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성경에 등장하는 '라암셋'은 하 이집트의 수도였던

'피 람세스(Pi Ramsess)'인 듯하다.

 

이집트 역사 학자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가 가장 번성하고,

주변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가

제19왕조가 들어선 신왕조 시기라 한다.

이 신왕조 2대 파라오가 세티 1세였고,

그는 피 람세스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고,

이집트 제조산업을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가설마다 연도에 차이가 나지만

기원전 1290년에 파라오로 통치를 시작한

세티 1세는 기원전 1300년 즈음에

라암셋에 왕국을 건설했다고 한다.

 

이를 종합해본다면, 

기원전 1300년 즈음 노예가 된 이스라엘은

약 80~100여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200년 즈음에 이집트를 탈출한 듯 하다.

 

 

 


 

나일 삼각주 어귀의 고센 지역은

곡창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또한 이곳은 하-이집트의 수도이기도 했다.

(훗날 세티 1세의 아들 람세스 2세는

이곳을 상,하 이집트 전체의  수도로 삼는다)

 

바로 그런 땅에 히브리 민족이 살고 있었다.

게다가 히브리인들의 인구는 거대했다.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탈 이집트할 당시 히브리 민족의 수는

대략 60만 면 정도로 추산된다.)

 

군사적 요충지요, 거대 곡창지대에 이민족이 살고 있다?

게다가 본국인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거대하다?

이것은 얼마나 위협적인 요소인가?

 

그런 위협요소에 비해 이집트 왕국은

도리어 여러 불안요소가 많았다.

왕조가 주창된 지는 이제 채 10년 정도였다.

아직 왕권이 탄탄하지 않았다.

언제든 힘 있는 세력이 형성된다면

순식간에 왕조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강한 왕국이 들어선다면?

그리고 그들이 이집트를 공격한다면?

그리고 이집트 입구에 살고 있는 이 이방민족이

타 왕국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킨다면?'

 

사건의 선악 여부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고,

히브리의 아들들을 죽이라 명령했던

파라오의 결정은 그런 측면에서

상식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들이다.

 


 

사건의 시작은 요셉을 몰랐던 왕의 등장이었다.

 

요셉을 알지 못했던 왕은

제12왕조에서 제19왕조까지

총 7번의 왕조가 바뀌었을 때 등장했다.

약 5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100년을 한 세대로 삼아 따져보면

다섯 세대가 지나니

분명했던 하나의 진실이 잊혀진 것이다.

성경의 레위 족보로 따지면 더 가파르다.

레위부터 아므람까지 두 세대,

약 200년 만에 하나의 진실은

역사 속으로, 오늘의 현실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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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스라엘의 계보로 살펴보면, 요셉부터 모세까지 약 500년이라고 주장한 역사학자들의 기간산정에 무리가 따른다.

레위부터 모세까지 계보를 추적해보면, '레위-크핫-아므람-모세'까지 총 4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랍비는 성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머문 햇수를 약 210년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경을 근거로 210년 정도 이집트에 히브리인들이 머물렀다고 말한다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 이집트에 정착한 야곱의 가족들은 모두 70명이었는데,

탈이집트 한 이스라엘 민족은 60만 명에 육박하는 것이다.

아무리 한 사람들이 많은 아이들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어떤 학자들은 당시 노예 및 최하층민을 일컫던 

'합비루'라는 말이'히브리'의 어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히브리민족 60만 명은 이 전체 '합비루'의 탈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약 4~500년 간 머물렀다는 의견이 맞는 듯 하다.

이 경우, 이스라엘 아들들의 계보에서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족보를 기록함에 있어 어떤 알지 못하는 법칙 혹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누락 시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스라엘이 죽었을 때, 

요셉은 이집트 사람들과 같이 그를 매장하러 갔다.

이집트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애곡 했던지

요단강 어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집트 사람들의 통곡'이란 뜻의

아벨미스라임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더불어 생활했고,

함께 웃고, 울었던

두 민족이었다.

그들은 요셉의 하나님을 알았고,

어떤 이들은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대가 다섯 번 돌아가자,

아니 어쩌면 두 번 만에

그들은 모든 사실을 잊어버린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언젠가 요셉의 풍년과 흉년을 묵상한 적이 있다.

나는 이를 묵상하면서

흉년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어려움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다.

현실적 어려움이나 장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심으로 갈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시간은 어떤 의미, 특히 영적인 부분에서는

'풍년'의 시기라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이 없어도 너무 잘 살 수 있을 때'

도리어 그 때가 무서운 것 아닌가?

현실적인 풍요나 형통의 순간이

도리어 영적 흉년, 기근의 때일지도 모를 노릇이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radiantguy/63744965

 

나는 과연 어떤가?

나는 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하나님의 존재를,

 잊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여!

연약하고 교만한 나여!

부디 잊지 말기를!

 

오늘, 내게 베풀어두신 은혜가 있다면,

혹시 오늘, 말씀의 깨우침이 더 있다면,

부디 더 갈망하고, 더 채우고, 더 간직하기를!

 

그래서 훗날, 영적인 흉년의 때가 다가올 때,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거나

자고 하여 내쳐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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