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날짜: 2019년 8월 23일(금)
묵상 본문: 출애굽기 5장~7장
"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순간부터
이 백성의 사정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출5:23)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상황이 더 나빠지고
이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고,
오랫동안 묵상하며,
때로는 그 방법이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님에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랐는데,
도리어 이전보다 못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맞은 적이 있는가?
그래서 결과를 보고 낙심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동안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분명하게 확신했던 과정 자체를
의심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 결과, 자기 자신이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고
강한 의심으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는가?
그런 적이 있다면,
다행이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은 비단 오늘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신앙의 선배들 역시
무수히 겪어왔던 과정이었다.
기뻐하라.
이런 과정을 겪었다고 해서
오늘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지 못한 것이 아니며
그동안의 과정 속에
하나님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의심일랑 잠시 접어두자.
오늘 성경의 모세가
꼭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란 명령이었다.
모세는 싫었다.
이미 40년 전에 큰 실패를 맛보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굳이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이젠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 안 간다고 했다.
다섯 번이나 핑계를 댔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더러 가라셨다.
함께 하시겠다고,
반드시 구원하시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하셨더랬다.
모세는 결국 그 약속을 믿었고,
자신의 뜻을 돌이켜 이집트로 간다.
빠빰~.
드디어 모세는 용기를 내어 파라오를 대면한다.
그리고 하나님 뜻을 당당히 전했다.
이제 형통한 과정이 있어야 했다.
아니다.
솔직히 하나님께서 이미 파라오가
바로 수긍하진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알려주셨다.
그래도 더 상황이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 모세는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도리어 최악이 되었다.
안 보내주면 안 보내줄 것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핍박받기 시작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부르심 자체를 의심한다.
너 때문에 그렇다고,
차라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출 5:20~21)
이집트에게서도,
이스라엘 동포에게서도,
양쪽에서 똑같이 모세를 거부한다.
그는 광야에서도 외톨이었지만,
여기서도 외톨이다.
그래도 미리안 광야에서는
아내나 자식같이 자기 편이라도 있었지,
여기선 외톨이일 뿐만 아니라
안티팬들이까지 양껏 생겼다.
자칫하면 돌에 맞아 죽게 생겼다.
모세는 또다시 깊은 패배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안 온다고 했잖아.
내가 말도 더듬고
능력도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시절
이미 큰 패배를 맛본 모세였다.
나는 모세가 소위 '이집트 왕자'였던 때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이 잘못되어 광야로 도망친 것은 그가 '구원자'로서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맛 본 최초이자 최악의 실패였을 것이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굳이 부르셨다.
여러 번 타일르고,
설득하고,
조력자도 붙여주고,
약속도 하시고,
그런 오랜 과정을 지나오며
어쩔 수 없이 해 보겠다고 나선 길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해서
자신을 거슬러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 있나?
모세의 마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솔직한 모세는 하나님께 그대로 말한다.
"저들을 구해주신다고요?
주께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저들을 구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출5:23)
다행히 하나님은
그런 모세의 불평을,
모세의 지금 상태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주셨다.
채근하거나
분노하시지 않고
도리어
이해해주셨다.
"이제 너는 내가 바로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그를 안심시키셨다. (출6:1~2)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는데,
아니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나의 삶은 더 궁핍한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당장 처한 환경을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
'믿음'과 '인내'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다행히 주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믿음이나 인내를
강요 하시진 않는것 같다.
'아브라함이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이라고 나는 믿는다.
때문에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우리를
용납해주신다.
일방적으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 모세를 위로하고 안심시키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모습으로 인내하신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전의 결과가
항상 좋을 순 없다는 것이 함정!
모세도 그랬다.
다시 위로를 얻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갔고,
파라오에게 다시 하나님 뜻을 전했다.
결과는 역시나
또다시 실패!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출 6:9)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이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도리어 계속해서 나빠질 수도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와 확신을 받아
조금씩
다시 나아갈 용기를 내지만
또한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계속 반복될지 모른다.
신앙적인 삶이란
어쩌면
이런 과정들의 연속된 선일지 모른다.
신앙의 성숙이란
어쩌면
불확실한 현실,
변화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바로는 네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 뜻대로, (중략)
내가 직접 나서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이끌어 낼 때에
내가 하나님인 것을
이집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출7:4~5)
도무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오늘의 상황을 마주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오늘의 위로와
오늘의 확신,
오늘의 은혜로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직접 일하심으로
그리고 나의 아주 작은 순종과 헌신으로
마침내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실
역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무수한 불확실 속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는 나를 위로하며,
오늘의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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