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날짜: 2019년 8월 25일(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14장~15장
'우리를 이집트에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출14:12)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 사람이 죽어서
바닷가로 밀려오는 것을 보고,
˙˙˙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었다.
(출14:30~31)
오늘 본문에는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
또는 현실의 난관에 봉착한
두 주체가 등장한다.
한쪽은 자신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보내주어야만 했던
이집트의 왕이었고,
다른 쪽은 그 왕에게서 벗어난
자유민 이스라엘이었다.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었던
두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일한 사건을 마주하며
거의 동일한 인식과 태도를 보인다.
#1. 한쪽 - 이집트의 왕, 파라오
그는 지금 엄청난 분노와
극한의 상실감 속에 있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천한 노예 히브리의 신을
인정한 적이 없다.
나의 신보다,
아니 신의 아들인 나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0번의 사건은
나는 지치게 했다.
그것은 분명한 거짓 술수였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아들의 주검을 안고 있다.
때마침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히브리 노예들이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했다.
어리석은 것들.
그 게으름뱅이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
마지못해 보내줬지만,
그렇게 보내줄게 아니었다.
이 땅에서 멸절시키고야 말겠다.
본 때를 보여주마.
최강의 전차부대를 소집하라!'
그는 지난 10번의 재앙을 기억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무시였든,
혹은 자만에 의한 망각이든,
그는 히브리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2. 다른 쪽 - 어쩌다 보니 자유민, 히브리 민족
'80년을 넘기는 노예생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무수히 이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랐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나흘이면 갈 수 있겠지?
설마 파라오가 뒤쫓진 않겠지?
처음 보는 어중이긴 하지만,
'모세'라는 양반이
그동안 별 수를 잘 쓰던걸!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덕분에 주머니도 두둑이 채웠고,
무사히 성읍까지 갔으면 좋겠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모세는
어딘가 특이한 존재였을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마음깊이
믿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그가 한 행동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파라오를 설득한 것이다.
또 그의 말을 따랐을 때,
이스라엘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주 큰 확신은 없지만,
지금은 이 사람, 모세를 따라가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사건은 그때 터진다.
모세는 하나님의 천사가 이끌고 있는
구름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간다.
모세의 눈에는 확실한 위로였겠지만,
이스라엘의 눈에는
신기한 자연현상만 쫓아가는
그의 모습이 그리 탐탁진 않았을 것이다.
'약속의 땅은 동쪽에 있다.
그런데 이건 남쪽 방향이다.
이 사람은 정확히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영부영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피-하히롯'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이스라엘의 등 뒤에서
거대한 먼지바람이 이는 것이 보였다.
'이집트의 전차부대'란다.
이제 곧 따라 잡힐 모양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의 바로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
이 사람 모세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이다.
피-람세스에서 동쪽으로만 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 앞에 서자
그들도 지난 10번의 재앙을 기억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무시였든,
혹은 자만에 의한 망각이든,
그는 지금까지 이 곳으로 인도하신
자신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지난 모든 순간들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고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모두 목도했다.
이집트의 왕과 군대도 경험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경험했다.
그 것은 한 두 번 만에 끝난 것도 아니었다.
자그마치 10번이나 반복되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하면서 다른 10가지 사건이 있었다.
분명히 경험했고,
분명하게 알았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었다.
이스라엘도 그랬지만,
파라오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분명히 경험했는데,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이 그랬고,
자신의 힘을 빼앗긴 파라오가 그랬다.
완벽한 대척점에 있었던 이 둘은
동일한 사건 앞에서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지난 시간들을 망각했다.
사실,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들에게 지난 10가지의 큰 사건을 보여주셨지만,
지난 80여 년의 노예세월,
아니 나아가 지난 430년의 이방세월을 뒤엎기엔
이 사건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두 주체에게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다시 한번 보이셔야만 했다.
이들과 같은 곳에 있었던
또 다른 핵심주체였던 모세.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매섭게 추격하고 있는 이집트군을 바라보며,
그리고 거대한 노도의 홍해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당당하게 선포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위로한 모세였지만,
실은 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당장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드디어 그런 모세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왜 내게 부르짖기만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라.
저 바다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라고!
너의 지팡이가 저 바다를 향할 때,
저 바다는 뭍이 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믿으며,
미지의 바다에 손을 뻗는 순간 펼쳐진
홍해의 기적.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진퇴양난의,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과
마주했다고 느껴질 때가 생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잠시 현실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부르는 일 뿐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 위험 속으로,
그 불가능 속으로,
그 불확실 속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그 명령을 듣고는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었는지
스스로 확신할 수도 없지만,
티끌만한 '믿음'을 지렛돌로 삼아
아주 작은 힘을 내어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신다.
행복한 얼굴을 감추지 않으시곤
그것 티끌조차 마중물로 삼아
몇 갑절, 몇 백절, 몇 천 곱절의
은혜를 그만 내게 부어버리시는 것이다.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현실이 순탄치 않더라도,
확신했던 약속의 현실이
곧바로 펼쳐지지 않더라도,
굳이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때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안에서 결정했던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회개할 필요없다.
하나님은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실 때도
분명하게 계셨지만,
막막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도
분명하게 계신다.
그분은 비록 침묵하실지언정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신 것이다.
의심할 필요 없다.
후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혹은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아주 작은 마음을
근근이 붙잡으며
오늘의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그 바닷속으로,
그 불확실함 속으로 걸어간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함께 해주시기를 염원하며
한 발짝을 내딛는다.
그러면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펼쳐진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펼쳐진다.
물론, '매번' 그렇진 않지만,
모순적이게도
'반드시'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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