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하다보니 이래저래 걸리는 것이 많다.
오랜시간 몸에 배여, 쉬이 사라지지 않는 '한국인'으로서 특징들이 있어서이다.
먼저, <빨리 빨리> 문화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민족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충은 짐작하면서도) 정확히 인과관계를 따져보지는 않았는데,
여하간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빨리 빨리'는 이미 유명할 정도로
이런 성향을 한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지 싶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이게 때때로 걸림이 된다.
예를들어...
- 기도에 대한 응답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 어렵다.
- 은혜를 받았지만, 그만큼 내 삶 속에 '빠른' 변화를 달성하지 못해 어렵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글쎄 변화와 관련된 것이라 그렇겠지만,
원하는 신앙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빠르게' 좁히지 못할 때 가지는 '죄책감'이 있다.
이 죄책감은 또한 한국인의 <경쟁적> 문화와 결합하여 더 심화된다.
이른바 '남들보다 더 ~~~'에 관한 부분이다.
예를들어...
- 헌금을 '남들보다 더' 많이....(해야 복을 받는다.)
- 기도를, 성경읽기를 '남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더 신앙적인 삶이다.
묘하게 <기복적 신앙>과 결합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어쩌면, 목양이라는 미명하에 가해졌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탁월할 행정능력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없는 한 개인의 그저 순수한 신앙적 열심에 속한 것이라 할 지라도,
이런 경쟁적인 신앙적 열심은 언제든 문제가 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앞서 이미 말했지만, 이런 열심은 때때로 개인의 죄책감을 심화시키고,
더 나아가 개인의 신앙적 여정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뭐라고....
-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뭐라고...
물론, 이런 분석은 나의 일천한 경험에 국한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적어도...
한국의 <빨리빨리>, 그리고 <경쟁적> 문화는
'나 같이' 약해빠진 한 개인에게,
특히 기독교인으로 살려고 하는 한 개인에게는,
신앙의 여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인으로서, 또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참 어렵다.
죽을 때까지 내 신앙을 나는 과연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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