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9 - [여행일기: 독일 & 유럽 여행/25 크로아티아: 풀라] - 올해는 관광:Tour 말고, 휴양:Erholung을...(ft. 크로아티아 풀라 여름휴가)
올해는 관광:Tour 말고, 휴양:Erholung을...(ft. 크로아티아 풀라 여름휴가)
올해는 투어 말고, 휴양 한 번 해볼라고...크로아티아 풀라 바닷가에서 여름휴가를 우스개 소리로 독일 사람들 꿈은 "은퇴(Rente)"라는 말이 있다. 비교적 잘 갖추어진 사회보장 정책으로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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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휴가는 ‘투어 아닌 휴양(Erholung)’가 목표였지만,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꼭 있다.
독일 중부 마부르크에서 크로아티아의 풀라까지,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최단거리를 측정해도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을 통과하는 대략 1100킬로미터 남짓의 자동차로 적어도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만만찮은 여정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자동차로 유럽 다른 나라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었으나, 역시 걱정이 꽤 되는 차량여행이었다.
기계가 아닌 이상 12시간을 다이렉트로 운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기계에게도 쉴 권리를 준다고 하긴 하더라만. 여하간 장거리 운전의 부담을 덜기 위해 우리는 중간에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최대한 독일 국경에 가까이 당겨보니 뮌헨에서 멀지 않은 도시, 로젠하임(Rosenheim)이 검색되었다. 우리는 그곳을 중간 경유지(Zwischenstopp)로 삼았다. 이제 마부르크에서 로젠하임까지 6시간, 로젠하임에서 풀라까지 6시간으로 이상적인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원래 기록과 계획은 깨지라고 있다는걸?
분명히 12시간 운전이 어려워서 6시간 거리가 되는 로젠하임으로 1차 목적지를 정했는데, 아침 8시쯤 마부르크를 출발해, 로젠하임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되었다. 사실상 ‘여행이 시작되기 전의 여행’이었다. 뮌헨으로 들어가는 경계부터 로젠하임까지 구간에서 나는 아주 자주, 그리고 아주 오래 주차기어(P)로 놓아두곤 했다. 끔찍한 정체구간, 아니 사실상 주차구간이었다. 그나마 경유지를 설정해 놓은 것은 다행 중의 다행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도로의 정체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방학에 한창 늦잠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들이 다음날에는 미리 깨우지도 않았는데, 5시 반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다음 날, 우린 이른 아침 6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슬몃 '우리 아이들도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젠하임에서 출발해 해발 1300미터의 오스트리아 산지, 푸른 초원을 지나, 몇 번의 터널을 통과하고, 약간은 광산 공업지처럼 보이는 슬로베니아 국경의 마을들을 넘어서, 오렌지 기와지붕의 집들이 가득한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로 들어갔다. 딱 예상했던 시간인 6시간 남짓이 걸렸다.
매번 바뀌는 풍경들이 지루함을 덜어주어, 힘든지도 모르고 거의 논스톱으로 크로아티아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로 나뉘는 길목에 들어서자 여러 나라에서 온 차들의 번호판들이 보였다. GB, I, SLO, CH, NL, D 등등. 창 밖에 바뀌는 풍경만큼이나 여러 국가의 차들의 행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슬로베니아로 접어들고부터는 간판조차 낯설었다. 오스트리아까진 그래도 독일어가 있어 익숙했는데, 단순한 지명 이름이겠지만 해석할 수 없는 문자들만 표지판에 적혀있었다. 처음 독일에 도착했던 6년 전처럼, 다시 '문맹'이 추가된 이방인이 된 것이었다.
사실 독일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렇지만 그 쉽잖은 이방인으로서의 낯섦 가운데서도 익숙함의 둥지는 만든 모양이다. 독일어나 독일과 비슷한 모습을 보면 이젠 어느 정도 반가움이 생기곤 하니까.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우리도 해낸 것이 아예 없진 않구나.' 그동안 배우고, 익숙해지고, 성취한 것들에 대한 감사가 어렴풋이 속에서 일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우리는 목적했던 풀라의 숙소에 도착했다.
긴장이 풀리고, 먼 길의 피로가 살짝 밀려오던 순간. 도시 초입에서부터 느껴지는 여유로운 분위기, 붉은 기와지붕, 바다 냄새, 남쪽 햇살. 비로소, 우리가 찾고자 했던 그 ‘느긋함’이 서서히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흐린 하늘과 강한 비가 크로아티아에선 사라져 있었다. 아무 계획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우린 짐을 채 풀기도 전에 근처의 해변으로 다시 나갔다. 숙소에서 차로 약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몇 시간 가볍게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자갈밭에 누워 오후의 햇볕을 쬐었다.
우리의 휴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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