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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12시간, 육지 끝 바다 시작 – 풀라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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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 첫 번째 밤이 지났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제는 숙소 근처에서 물놀이를 했다면, 오늘은 다른 예쁜 해변을 찾아봐야지. 간단히 구글링을 하니 하와이 해변(Hawaii Beach)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첫 번째 목적지를 하와이 비치로 정하고 도착했는데, 아름답기는 했지만, 근처에 있는 고급리조트의 사적 해변(Pirvatstrand) 같은 느낌의 매우 작은 해변이라 오래 머물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날이 더워지면 곧 리조트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 텐데, 모든 가족들이 함께 놀기에는 턱 없이 좁아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근처에 있는 해변 중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적당한, 조금은 덜 유명한 해변을 검색했다. 그렇게 찾은 해변이 바로 Gortanova uvala라는 해변이었다. 이곳은 풀라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해변으로, 하와이 해변과 마찬가지로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해안가를 따라 꽤나 길게 마련된 해변에는 구역을 나누어 스포츠나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구역과 가족들이 조용히 해수욕할 수 있는 구역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터라 자리가 많았다. 반은 그늘인 곳과 반은 해가 드는 곳을 찾아 자리를 폈다. 간이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실 탈의공간이라는 것이 사람이 들이 일광욕하는 근처에 천으로 가려놓은 공간이 전부이지만 별로 꺼려지지 않았다. 독일 수영장에 있는 탈의공간은 남녀 공용인 곳도 더러 있는터라 어느 정도는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에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앞 쪽 공간에는 탈의실까지 오지 않고 비키니를 훌렁 벗어 물기를 짜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아니 앞으로도 저 사람에게까진 못 다다르겠다.

이래저래 편한 환경이었다. 튜브에 둥둥 떠서 시원한 바람을 맡기도 했고, 스노클을 챙겨 바닷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머리만 물 밖에 빼꼼 내밀고는 평영도 아닌 개구리헤엄을 천천히 하며 물놀이를 즐겼다. 무엇이 본전인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다음 일정도 없었으므로 바쁠 이유도 없었다. 물놀이를 하다가 귀찮아지면 자갈밭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과일이나 주전부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웠다. 옆을 보니 돗자리에 엎드려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어두운 피부를 가지고 싶어 태닝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나도 그들 곁에서 햇볕을 쬐었다. 충분히 까만 피부를 가졌기에 태닝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볕이 좋았다. 물놀이 후 젖은 몸을 말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에메랄드 바다에 닿은 새파란 하늘에 간간이 흰 구름이 바람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잔잔한 물소리와 신나게 놀고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노래처럼 들렸다.

여전히 아무 계획도 없었고, 바쁠 필요 없었기에 가만히 있는 때가 많았다. 그림처럼 예쁜 공간이었지만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문득 애들 사진 하나 쯤은 있어야지 생각이 들 때면 한 번씩 물가로 내려가 사진을 찍곤 올라왔다. 모든 것이 듬성듬성 틈이 많고 여백이 많았는데, 그 여백과 느슨함이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내가 비워 놓은 마음과 시간의 공간 속에 바람소리가 채워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졌고, 여유가 채워졌다. 기분 좋은 추억들이 잔잔한 크로아티아 바닷물처럼 찰방찰방 차오르는 것 같았다.
지난여름 프랑스, 네덜란드를 여행했을 때는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 관광지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메라는 쉴 줄을 모르고 연신 일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만 보았을 건물이나 램브란트, 고흐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기록으로 남기려고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보통 우리 가족의 여행이 그러했다. 그래서 이런 여유 있는 휴양은 사실 매우 낯설었다. 거의 처음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래서 매우 좋았다.

아이들도 이런 시간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이곳 고르타노바 해변으로 왔다. 그리고 엊그제 그랬던 것처럼 어제 놀았고, 어제 놀았던 것처럼 오늘 놀았다. 해변에서의 시간이 쌓이면서, 몸이 먼저 느긋해졌고, 마음도 따라 풀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모든 것들이 채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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