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이다. 은혜를 잊는 것은.
최근 나는 조금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황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실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적어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계속 가지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기대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뒤에 시험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그것은 때때로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어느 때에는 실체조차 모호한 심적인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은 거의 매번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경험에는 그러하다.
예를들어,
주님을 깊이 알게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치자.
그래서 항상 감사하겠다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겠다고 다짐한 뒤에는
이내 하나님과 어떤 이유에서든
일정부분 단절감을 경험하는 어려움에 당면하곤 한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이런류의 패턴이 잦게 반복되는 듯하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그것은
지금껏 내 인생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해서이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의 중심이 얕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집트를 탈출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홍해라는 거대한 바다가 갈라진 것을 눈으로 바라본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마실물이 없자 모세를 죽이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다.
관성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던 베드로.
순수한 그의 고백을 통해
예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그 신앙의 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실제 베드로라는 이름 역시 '반석'이라는 뜻 아닌가?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 혹은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욕망의 본성 드러냄'으로
사탄이라 칭해지는 큰 꾸지람을 받았다.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약함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얕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결국 지속해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Betrachtung] 돌아보지 말라
묵상 날짜: 2019년 8월 25일(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14장~15장 '우리를 이집트에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출14:12)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 사람이 죽어서 바닷가로 밀려오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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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앎도 결코 하나의 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을 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만
역시 이런 사실에 다시 발을 담가야만 한다.
인생이란 언제나 이렇게 약하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알기에 다시 이러한 나약함에 직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종종 이러한 약함은 은혜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한 인생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성취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게되기 때문이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자랑할 것이 없음을 고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낮아진 그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또다른 은혜가 임하곤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라 할 수 있다.
죽기까지 아마 이 삶은 반복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0:16)"
그렇기에 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태도(방향)와 시간'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상승선과 하락선은 언제나 병행하여 다가오는 법이다.
즉, 어느 누구나 원하지 않더라도 인생의 하양선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모든 인생들은
나아가는 큰 줄기의 방향이 하나님께 향해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된다.
그런 확신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의 순간이 최악의 절망이라 여겨질 때에도 버틸 수 있다.
결국 내 인생의 정산은 이 호흡이 끊어진 이후 그 분 앞에 섰을 때에 할 것이기 때문이다.
풀무불에서 정금을 연단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결국 이 거센 불을 통과하고나면 내 신앙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풀무를 통과한 뒤 단 한 방울의 믿음만 찾을 때라도
그 한 방울은 순수한 '정금'이기에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된다.
내가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때,
실은 그것은 거짓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불순물이 많은 것일 수 있다.
내가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을 때,
그 때 얻은 믿음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순수한 결정체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스스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고난의 한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것은 '당신 자체'이시자, 당신이 너무 사랑하셨던 아들 예수에게도 마찬가지셨다.
우리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롬4:18~22)
인생의 저점을 지날 때에도 그것은 그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물론 인생은 누구든 완벽하지 않기에,
그의 부족함은 분명 그 어려운 상황에 어느 정도 큰 기여를 했을 수는 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예외란 없다.
때문에 너무 자신을 정죄하거나 몰아칠 필요는 없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약5:17)
성경에도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 역시 실상은 우리와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 역시 우리와 동일하게 죄를 지었고, 어려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땅을 밟았던 모든 인생들 모두 그랬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
오로지 예수만 다르셨다.
오로지 예수만 이기셨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6:1)"
그렇지만, 그렇기에 또한 명심해야 할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책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하향 그래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결국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인정하고 회개하자.
그리고 변화하자.
누구든 인생의 하향선을 경험해야만 하지만
분명히 그 폭을 줄일 수 있고, 그 시간을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당장 치고 올라가자.
방향을 바꾸자.
너무 깊은 어둠 가운데 머물지 말자.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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