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명상 & 큐티] 잘 죽고 싶다 (tistory.com)
[기독교 명상 & 큐티] 잘 죽고 싶다
삶은 때론 선물처럼 때론 짐처럼 지금 곁에 머무니 아직도 멀어 뵈는 멀다고 착각하는 죽음을 만나면 옅은 미소라도 지어 보일 수 있기를 언제가 될까? 행여나 이 여정이 짧으면 어쩌나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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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먹길 이렇게 생겨먹어서...
나는 '죽는 것'을 많이 생각한다.
죽는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무섭다.
잘 모르는 곳이니까.
확신하기 힘든 존재라서...
막연히 두려워지곤 한다.
그래서 많이 생각해본다.
정말 죽는 게 무엇일지..
물론, 그렇게 한다고해서
죽음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은 결국 죽을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죽을 때까지
포기하기 힘든 주제인 것 같다.
영면(永眠)
'영원히 잠듦'
죽음을 흔히 수사적으로는
이렇게 묘사한다.
눈을 감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남아 있는 사람들...
살아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죽음은
눈을 감고,
반응이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죽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죽을 때,
죽음을 마주할 사람은 우리다.
죽은 우리를 보는 타인은
눈을 감은 우리를 보겠지만,
우리는 죽는 그 순간도
결코 눈을 감을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은 그 때에도
지금처럼 또렷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럼 죽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죽게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죽는다 것은 어쩌면
새로운 눈을 뜨는 것이 아닐까?
영안(靈眼)
영혼의 눈을 뜨는 것.
육의 눈을 뜨고 살던 우리가,
지금은 볼 수 없는
영적인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닐까?
성경의 창세기.
하나님은 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을 먹게 되면 죽게 된다고 하셨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어버렸을 때
그들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
영혼의 눈, 거룩한 눈을 뜨고,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그들이
이전에는 그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육신을 향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눈을 뜨며,
그들은 그렇게 죽어버렸다.
비록 그들은 그 때에도 숨 쉬고 있었을 테지만,
그들은 이미 그 때 죽었다.
그렇다.
죽는다는 것은
그 때 그 순간에도
눈을 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을 뜨는 것이었다.
최초의 죽음도 눈을 뜨며 시작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다시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죽고,
다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새로운 눈을 떠야 한다.
죽은 세상을 향한 눈을 감고,
태초와 다름없는
생명을 향한 눈을 다시 떠야 한다.
그 때 그 죽음은
그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더 확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더이상 두렵지 않게 힘을 줄 것이다.
첫번째 죽음은...
육의 눈을 뜨는 것은
우리를 쇠약하게 만들었지만,
두번째 죽음은...
영의 눈을 뜨는 것은...
우리를 당당하게 할 것이다.
죽음의 천사, 사망도,
지금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지...
그들을 마주 보면 두렵지 않을것이다.
어쩌면...
무섭게 생긴 그들이 우리에게 절하며,
"하나님의 왕자님,
하나님의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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