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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기대와 희망이 무너졌을 때...

by 바후르 202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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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인적으로 희망하고, 기대했던

세 가지 정도 긍정적인 전망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저 그런 희망 정도는 아니었다.

손에 잡힐 듯 보였고, 거의 이뤄질 것 같은 전망이었다.

심지어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막힌 조건과 결과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것으로 영광 받으실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그리 쉽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 달 여 정도 지난 지금.

희망 섞였던 기대들은 하나하나

내 손을 빠져나가고 있다.

 

어제. 첫 번째 희망이 사라졌다.

나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겉으로는 짐짓 담담한 듯했으나,

사실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두 번째 희망도 사라졌다.

물론 내가 가질 수 있는 조건의 것이

원래 못 되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서 도리어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리라는 확신했던 터였다.

그런 희망 섞인 기다림의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지만,

결국 내 손에는 바스라진 먼지 조각만 남았다.

오늘은 겉으로도 담담하기 어려울 만큼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제 나에게는 마지막 하나의 희망이 남아있다.

아니, 오늘 나에게 그것은 더 이상 희망은 아닐 듯 싶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마 내 손을 떠날 것 같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희망은 역설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제가 될 수 있다."라고 그의 책에서 말했다.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 한 개인이 느끼는 좌절감은 

한 인생의 명(命)을 앗아가리만큼 강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희망은 동시에 큰 위기이기도 하다.

 

오늘 내가 느끼는 좌절감을 빅터 프랭클의 그것과

절대적인 수치로 비교하면 아마도 깃털만큼 가볍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쉽지 않다. 힘들다.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무너졌을 때.

 

사실, 지금이 그러한 순간인데.

그런 지금 이 순간 역설적으로 다시 하나님을 간절하게 바라본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희망할 수 없는 이 순간.

도리어 하나님의 위로와 임재, 계획하심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원래 자녀는 뻔뻔스럽기 그지없기에,

내 모든 죄악을 그대로 안고 그분에게 다가간다.

아버지 곁에 다가가는 아들에게 뻔뻔함은 이내 당당함이 된다.

 

죽어버린 나의 희망이 썩은 씨앗이 되어, 

내가 심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기를 소망하며...

 

 

출처: 하와이 공영 라디오 (www.hawaiipublicradi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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