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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교육 & 자녀교육

[독일, 육아일기 & 아빠육아] #01. 독일, 자연교육: 봄에 피는 '양파 꽃' (Experience learning)

by 바후르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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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르부르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대학교가 있는 마르부르크가 종교적, 역사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라면, 내가 있는 곳은 목가적인 농촌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르부르크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운전을 하면 오래된 독일 전통 가옥에서 넓은 들판으로, 다시 말과 양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시골 숲으로 바깥의 풍경이 바뀐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동네의 자연은 끝내준다. 하늘 위로는 날렵한 매가 연신 날아다니고, 가끔 뒷마당에서 여우가 낮잠을 자고 가곤 한다. 겨울 한 날은 추위를 피한다고 너구리 한 마리가 분리수거 통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집 뒤로 넓게 트인 들판에선 야크(Yak) 떼들이 풀을 뜯는다. 그렇다 '블랙야크'할 때 그 야크다. 맨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가만 보다보니 그냥 털이 길고 뿔이 더 날카로와 보이는 평범한 소 과의 동물이다 싶어질 정도로 흔한 일상이 되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크들. 겉모습은 무섭게 생겼는데, 그래도 초식동물이라 어찌 겁이 많은지 사람 발소리에 기겁을 하며 도망치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동네는 자연교육 장소로 근방에선 꽤나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내려가면 '숲 유치원(Waldkindergarten)'이 있다. 마르부르크 도시에 있는 초등, 중등학교에서 자연교육(Erlebnis-pädagogik) 활동을 하러 많이 찾는 곳이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랍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심 조심스런 마음도 들지만, 오늘은 자랑을 좀 해야겠다. 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것이니, 주신 분에게만 그래도 기쁨이 되길 바라면서...

 

비단, 자연만 좋은 것이 아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도 끝내준다.

 

우리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은퇴한 연금생활자(Rentner)이다. 할아버지는 청소년 센터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교육자였고, 할머니 역시 가족상담을 오랫동안 진행하셨었다. 두 분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네 명의 자녀도 훌륭하게 키웠지만, 이후 2명의 자녀를 입양하여 또한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온전하게 키워냈다. 여러모로 본받을 것이 많은 훌륭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과 함께 살면, 여러모로 좋은 것이 많다. 특히 아이들에게 그렇다. 오늘의 이야기도 이 두 분과 함께한 경험이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기 전, 그러니까 한 10월 말 쯤, 우리가 집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옆집 아저씨 부부가 화단에 거름을 뿌리고 흙을 돋우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물어보니, 겨우내 둔턱의 잔디와 풀이 죽지 않도록 따뜻하게 퇴비를 섞은 흙을 덮어주는 것이라 했다.

 

거기서 말을 마쳤어야 했는데, 고만 '아이들도 심심해하면, 같이 해도 좋아!'라고 말을 해버리셨다. 그냥 말만 던지고 넘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심시어 막내에겐 작은 모종삽까지 쥐어주셔버렸다. 이맘때의 아이들에게 '더러워 지는 일'이란 백이면 백, '훌륭하고, 재미있는 놀이'가 되곤 한다.

 

장화를 신고, 삽까지 쥐어 든 아이들은 마치 완전무장을 한 군인마냥 온 화단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쯤되면, 짜증이 솟구칠법도 한데, 아저씨 부부는 '허허허' 인자한 미소만 띄우시고 있었다.

 

'아, 저건 거짓말이다. 그냥 남의 아이라 봐주고 있는거야. 속으로는 열 받으신게 틀림없어.'

 

상당한 시간 동안 그 '난리(!)'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아저씨 부부의 모습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어른들의 부지런함은 알아줘야 한다. 집 둘레둘레 버려지는 공간이 없도록 화단을 가꾸어 놓았다. 아이들이 아저씨, 아주머니와 함께(?) 북돋아 놓은 퇴비들의 모습. 왼쪽 귀퉁이 군데군데 움푹 패인 자국은 근처에 살고 있는 여우가 방문하며 남겨놓은 '발자욱'이다.

 

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아저씨가 움직이셨다.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얼른 집으로 들여보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저씨는 손수레 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자동차처럼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아~, 거짓말. 말도 안된다. 또 내 인생에서 끝판 대장을 만났구먼.'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민망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솟구쳤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내리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한 껏 정이 들었는지, 그 때부터 두 사람이 보일 때면 "할아버지(Opa 오파), 할머니(Oma 오마)."라고 외치면서 지금껏 따라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을 받는지 아니받는지, 말하지 않아도 제대로 아는 법이니까.

 


그렇게 겨울을 모두 흘려보내고, 봄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할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얘들아, 지난 겨울 함께 심어놓은 '양파(Zwiebel)' 기억나니?

 

그게 사실은 부활절 즈음에 핀다고 해서

'부활절 꽃(Osterblumen)'이라고불리는 거란다.

 

요즘 보니 예쁘게 순을 틔웠더구나.

집 구석구석마다 솟아 있으니, 한 번 찾아보렴.'

 

곳곳에 심어 놓은 양파들이 예년보다 띠뜻한 날씨에 벌써부터 삐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왼쪽 눈사람 장식을 보면 정말 겨울과 봄 사이 어디 쯤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오래된 기억을 '어제 기억'처럼 더듬으며 집 안 구석구석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좋은 '교육자'를 이웃으로 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사실, 계절을 관통하며, 일상에서 배우는 지식만큼 피부에 와닿고 실제적인 교육이 다시 있지 않다. 그래서 경험교육에 대해 이야기 한 저명한 옛 지식인들은 항상 이러한 생활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루소가 그랬고, 존 듀이도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 친구가 선물해준 흔한 독일의 봄 꽃, Osterblumen.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은 축복에 틀림 없다. 달리 기적이 있으랴? 이런 삶이 기적인 것을...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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