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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교육 & 자녀교육

[독일, 교육학 & 초등교육 & 유아교육] #04. 독일 유치원 친구 - '명단부터 작성해!' (Freundebuch)

by 바후르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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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거의 두 달이 가득 찼다.

우리 가정이 독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독일 교육제도'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하면 '유치원 잘 다니기, 친구들 잘 사귀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잘해나가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엔 좋은 유치원과 특별히 다정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들은 매일 아침 등원할 때마다 활짝 웃어 보이며, 두 팔로 아이들을 힘껏 안아준다. 그러고는 이내 아이들에게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붓곤 한다.

부모로서 그 모습을 곁에서 볼 때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방인이라 더 손이 많이 갈 법도 한데, 더 사랑해주고 더 관심을 기울여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독일어가 서툴어 그분들의 말을 모두 이해하진 못하지만, 아이들 역시 적어도 자신들이 많은 사랑받고 있음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의 표현 덕분에 아이들은 매일매일 독일 사회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해주면 부가적으로 좋은 것들이 따라온다. 그런 선생님의 반응을 보며 반 친구들도 아이들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무시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벌써 꽤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내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 말은 그렇다.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으면, 별스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단다. 그냥 같이 놀았는데, 자기랑 친하다고 말하고 넘어간다. 내심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할 텐데, 정말 친하기는 한 건가?'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하지만, 다른 이야 그에 대해 뭐라고 떠들든 자신들이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자기 세상의 진실'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냥 넘어갔다.

 

 

첫째가 받아온 친구 주소록. 이걸 보면 옛날에 나도 노트에 직접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적어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은 아직도 옛스러운 것이 있다. 연초에는 시에서 관공서나 병원, 유관기관의 전화와 주소가 적힌 전화번호부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러던 중 어제 첫째가 두 명의 유치원 친구들에 각각 책 한 권씩을 받아왔다. 어떤 책인가 싶어 살짝 쳐다보았더니 친구 주소록이었다. 그냥 친구 주소나 연락처만 적힌 수첩은 아니고, 앨범에 가까운 제법 크고 두툼한 책이었다. 친구들이 각자 자기의 취미,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하여 그 책의 주인에게 선물로 주는 모양이었다. 일테면 '친구 인명사전' 쯤 되려나 싶다. 아이들은 자기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혹은 자신이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자신의 친구 주소록을 건네주곤 한단다.

 

첫째 딸아이에게 들으니 책을 건네 준 그 둘은 정작 서로 친하지 않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각각 책을 보니 정말 두 친구의 정보는 서로의 책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정말 첫째 딸과만 친한, 혹은 친해지고 싶은, '첫째 딸의 친구'가 맞았던 것이었다. 이제 유치원에 간지 두 달이 약간 못되었고, 독일어가 서툴러 유치원 활동에 적응해주기만 해도 감사할텐데, 그 와중에 친구를 사귀고 의미 있는 교제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특한 마음이 일었다. 아이들이 나름으로 잘해주고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첫째가 친구들에게 적어준 자기 주소록, 오른쪽에는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림을 직접 선물로 그려넣었다. 

 

 

한 편으로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어느 가정이 모두 똑같겠으나 우리 집 삼 남매는 모두 성격이 다르고, 그중 첫째는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인들이 아이들의 독일 적응을 생각할 때면 늘 가장 걱정스러워했던 것이 첫째 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첫째는 유치원 활동이나 독일어 수업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여러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도 생각보다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하원 시키기 위해 유치원을 나갈 때면 다른 반에 있던 딸들의 친구들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잘 가, 내일 보자"라고 인사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었다. 

 

이래저래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매일 밤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과 감사가 솟구친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생활하는 그 시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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