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교육 & 자녀교육

[독일교육 & 유아교육 & 홈스쿨링] #16.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자라는 부모 (feat. 아들의 거짓말, 훈육)

by 바후르 2020. 6. 27.
반응형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셋째 아이가 분명히 어떤 잘못을 했고, 그 잘못에 대해 또한 제대로 혼났다.

꾸지람을 듣는 일은 사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이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믿는다.

 


이 곳과 이웃이 편해지면서 아이들은 부모 없이도 집구석 구석을 뛰어다니며 놀곤 한다. 가끔은 부모가 곁에 있는 것을 방해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저리 가. 우리 지금 놀고 있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점차 부모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다행스러운 모습이다.

 

 

집 곳곳에 숨어 있는 열매들을 찾아, 자유롭게 따 먹는 막내. 독일은 산딸기가 흔하다.

 


아이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놀았다.

첫째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고, 

둘째는 정원 화단에서 놀고 있었고,

셋째는 어디론가 시야에서 사라져서 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셋째가 품에 한 움큼 사탕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그 사탕이 어디서 난 것인지 물어보았다. 

"이거, 할머니가 줬어."

셋째는 금방 그렇게 대답했다.

 

뭐, 이 곳에서 사탕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는 편이고, 사실 평소에도 늘상 비슷한 일이 있었던 일이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면 실상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워낙 '촉'이 좋은 아내는 내심 뭔가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몇 번을 다시 물어보며, 아이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답은 번번이 같았다.

 

아내는 아이를 계속 의심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일단 가지고 온 사탕들을 받아 찬장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옆 집 할머니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듣고자 했음일 테다.

 

그런데,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사람은 없었고, 심지어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셋째는 큰 잘못을 했다. 세 가지의 큰 잘못을 했다.

 

1. 아이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갔다. 

2. 아이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지고 왔다. 

3. 아이는 거짓말을 했다.  

 

철없는 아이의 실수이니, 부모로서 여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혼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중요한 잘못들이었다. 어른이었다면, '무단침입, 절도, 거짓증언'같은 짐짓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잘못들이었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으로만 본 것은 아니었다. 마음 한 켠에서는 희미하게 웃음이 날 정도로.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이번 실수는 아이가 인생에서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중요한 배움의 기회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훈육방법일까 고민했다.

 

자칫 너무 흥분하고, 과장하여 무섭게 윽박지르는 식이 되면, 아이는 필요 이상의 두려움만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잘못에 대한 인식보다는 감정적 트라우마만 깊이 새기게 될 공산이 컸다.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아이가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도덕적 판단 기로에 설 때면 두고두고 기억하고, 참고할 수 있는 뼈와 피부에 새겨진 가르침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이를 꾸중하기 위해, 손을 붙들고 2층으로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바른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내내 드렸다.

 


아이를 자리에 앉혔다. 소리는 짐짓 낮고 차분하게 잡았다. 얼마큼 비슷하게 느껴졌는지 알 길은 없지만, 최대한 명확하고 단호한 어조를 취하려고 했다.

 

아이가 저지른 세 가지 잘못이 무엇인지 수차례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아이가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따라 말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같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많은 설명은 의도적으로 최대한 자제했다. 단지 세 가지 사실을 내 입으로 먼저, 그리고 아이의 입을 통해 되뇌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무엇 때문에 혼나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았으면 했다.

 


아저씨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 선생님'이 되어 주신다.

 

가정에서 훈육은 그렇게 끝났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실질적인 행동을 통하여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분들은 여즉까지 모르실 수 있겠지만) 아이가 피해를 끼친 당사자인, 옆집 아저씨 부부를 직접 찾아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나는 아이를 일단 거실 아내 곁에 두고, 먼저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는 사무실에서 개인용무를 보고 계셨다. 내가 찾아가자 언제나와 다름없는 약간의 호기심을 드러낸,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짐짓 무거운 마음으로 그분에게 말을 꺼냈다.

 

"아저씨, 내가 당신에게 말할 것이 있어요.

우리 막내, 새민이가 오늘 당신의 집을 찾아갔었습니다."

 

나는 여기까지 말했는데,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 맞아 내가 지나가다가 새민이가 우리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을 봤네.

그리고 아이가 이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사탕을 찾아 한 아름 손에 가지고 나오더군."

 

"맞아요. 우리도 방금 안 사실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미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일러주었습니다. 

아이는 두 번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곧 아이가 남은 사탕을 들고 당신을 찾아와 용서를 구할 거예요."

 

"알겠네, 그리고 고맙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네.

특히 아내는 아이들이 예뻐서 사탕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지.

하지만, 아이들이 사탕을 받고 싶어서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한 번도 준 적이 없다네.

자네 부부가 사탕 같은 간식을 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네.

 

좀 늦었지만, 만약 자네 부부가 사탕을 주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우린 지금처럼 매일 한 번씩은 사탕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라네.

 

오늘은 아내가 수영을 갔고, 아마 새민이는 사탕을 받고 싶어서 예전처럼 찾아왔던 것 같아.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지만, 아이는 어디에 사탕이 있는지 알았겠지.

 

우리는 모두 이해한다네.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게. 아이는 지금 배우는 중이지 않은가?

 

그러나 자네의 말처럼 이렇게 잘못을 바로잡고, 남은 사탕을 돌려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군.

그것은 무척 잘하는 행동이야.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무엇이 그른 행동인지 배우는 것은 아이에게도 무척 중요한 과정이니까.

 

그럼 이제 아이를 데리고 오게. 기다리고 있겠네."

 

아저씨 는 사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평생을 청소년 단체에서 일했던 청소년 교육가였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목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먼저 이해해주었다. 주변에 같은 방향으로 아이들의 생활 교육을 도와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무척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내 등에 대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지막 말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말이었다.

 

"자네도 또 그렇게 부모의 역할을 하나 더 배워가는구먼."

 


정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많이 보인다. 아이의 곁에 서서, 어떨 때는 조금 앞에서, 다른 때는 조금 뒤에서 걸어가다 보면 내가 도리어 더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사실 내 부족함이 더 많이 보인다.

 

언젠가 산책을 하다 말고, 둘째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는 눈을 감고 걸어보라 했다. 이번에는 자기가 나를 인도해보겠다고. 어린 딸을 잠시 의지해보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 부모가 모든 것을 꼭 다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세 아이를 둔 부모이지만, 여전히 부모로서 충분하지 못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부모도 큰다. 나는 오늘도 깨지고, 다시 배우고, 조금 더 부드럽게 나를 다듬어가는 중이다.

 

특히 나와 너무도 닮은 막내를 보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주고,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를 꾸중하며 "넌 꼭 너 닮은 아들을 낳아봐야 한다"라고 말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단지 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게 무슨 말씀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새민아, 너도 꼭 너 같은 아들 낳아라. 이건 아비의 분명한 축복이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