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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 성경 : 말씀 : 묵상/큐티 : 성경묵상

[성경말씀 & 성경읽기 & 큐티] 하나님 약속이 안 믿기면, 안 믿으면 된다.

by 바후르 2020.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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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움의 정체


사람이 힘이 들면, 이성보단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다.

감정의 영향이 크면, 현실의 핵심을 바로 보고, 파악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실상 어려움을 준 원인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로되,

'어렵다'는 감정에 매몰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늪과 같이 '어렵다'라는 감정만 남게 된다.

https://www.flickr.com/

 

# '어렵다'는 감정에 속지 마라


나는 지금 어렵다.

왜 어려운지, 분명 알았던 것 같은데. 이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렵다는 <마음>은 다른 어려운 <상황>을 낳고,
그 어려움의 <상황>은 다시 일상에서 어렵다는 <감정>을 낳는다.

결국, 실체가 모호해진 어려움의 꺼풀들은 거품처럼 겹겹이 쌓여,
그 이유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 어려움 속에만 둘러싸이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내가 꼭 그렇다.

 

소방수들이 화재를 진압할 때,

보이는 모든 불에다 소방수를 퍼붓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느 곳이 착화점이 될지?

어디에 다른 불이 번질지?

정확하게 파악해가며, 불 길을 잡아간다.

 

나는 꼭 그 반대이다.

 

나는 도리어 한 컵에 담긴 액체 비누 속에 물을 뿌려대는 것 같다.

뿌리면 뿌릴수록 거품이 불어나 온 바닥에 차고 넘친다.

컵 만 제거하면 이내 깨끗하게 씻어지고,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컵이 보이지 않아, 그 컵은 그대로 둔 채,

깨끗하게 씻겠다고 애만 쓰며 물을 퍼붓는 꼴이다.

 

결국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형편없는 거품만 뒤엉키고 있다.
계속 불어나 버리고 있는 거품처럼,

꼭 내 어려움이, 내 두려움이 그와 같다.

 

https://pixabay.com/

 

# 지금 내 어려움의 원인


글을 적고 있는 지금에야,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 인생의 촉박함 속에

그 분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장 먼저 줄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렴풋이, 돈 때문인 줄 알았다.
내 능력이 많이 모자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돈이나 능력이나, 상황은 이전에도 똑같았다.
사실 어쩌면, 그때는, 이전에는 더 형편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도리어 당당했다.

다른 이들은 나를 걱정하고, 채근했으나,

나는 도리어 당당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면 '뻥'이겠지만, 그것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 분과의 시간을 넉넉히 가지며,

그분의 나를 향한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래, 현실이 어려워도 믿음이 있었더랬다, 그때는.
그리고, 지금 보니, 결국 그 믿음대로 되었다.

 

그래 놓고, 어느 정도의 성취에,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

바보같이 가장 먼저 놓아버렸다.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때와 비슷한 모양의 다른 파도가 오지만,

안타깝게 지금 나에게는 그때와 같은 그런 믿음이 없다.

 

https://pixabay.com/



# 하나님이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된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시겠다 했다.
약속의 땅으로 나를, 우리를 들여보내시겠다고 했다.

감사한 말이다.
더 정확하겐,

그 말을 들었을 그 당시에만

감사했던 말씀이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그 말씀을 들은 이후, 내 앞엔 어디 꽃 길만 놓여 있던가?

정작 눈 앞에 있는 것은 가나안의 열매가 아니라,

아낙 자손이나 거대한 거인들, 대적들 뿐 아니었나?

그래, 하나님의 기적이 있었다. 과거에.
분명 있어서 여기에 왔다. 예전에.

그러나 현실에 직시해야만 하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장벽이고,

그 장벽에 막혀 미래는 보이지 않는걸,
어찌해야 하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그 약속이 도무지 믿기지 않으면,
그냥!

안 믿으면 된다.

<그래도> 된다.
그러나 꼭 <그대로> 된다.
<그만큼> 된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장 22-28절)

 



솔직히 오늘의 어려움을 앞에 두면, 하나님의 약속이 의심스러워진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실까?
그때 내가 들은 말씀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었을까?

그것이

처음에는 거룩한 의심이었을지 모른다.
신실한 겸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거품처럼 불어나서

하나님의 일하심마저 의심하게 만든다면.
그땐,

주저 없이 치워 버려야 한다.
그것이 처음엔 거룩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버려야만 한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오늘'의 믿음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과거에 주신 약속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언제가 될지(irgendwann) 알 수는 없지만,
심지어는, 안타깝지만,

내 인생 안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국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못 믿으면, 못 믿는 대로.
믿으면, 믿는 대로.
꼭 그대로.

 


현실을 돌아보면,
과거를 돌이키면,
어디 마냥 쉬운 일만 있었던가?

장벽처럼 주위에 둘러서 진 친 것 같은

어려움들이 없었던 적이 있던가?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평안 가운데만 임하던가?

성경 속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형통하기만 했던 모양이지?

오늘의 현실로 미래를 가늠하고,

믿을 수 없는 약속일랑 잠시 접어두기도 하고,

지성적으로,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파악'하려 애쓰는 사람아.

 

그래!

하나님의 약속이 믿기 힘들면,

그냥 믿지 말아라.

그래도 된다.
그리고,
꼭 그대로 된다.

네가 가진 믿음만큼만 된다.
야, 이 정대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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