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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무엇이 죄인가? 벗은 것인가? 숨은 것인가?(ft. 선악과)

by 바후르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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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8~10)


 
1.
태초의 아담에게 하나님께 유일하게 명하신 금지의 규칙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담은 (뱀에 꾀인 하와의 권유로) 그것을 먹었고,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 지은 첫번째 죄악, 원죄라고 흔히 알고 있다.
 
 
2.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왜 이것이 죄가 되는 것이지?   
 
 
3.
선악과는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구분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선악(善惡)'을 구분하는 것. 
얼핏 생각하면 그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지식, 또는 지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 
여전히 죄에 대한 부분이 명쾌하지는 않지만, 새로이 느끼고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소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에 대한 부분에 대한 것이다.
 
 
5.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우리가 선악을 구분하길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권위적이라서, 우리와 차별을 두시려고?
 
 
6.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코리아

 
 
7.
굳이 하나님이 권위적이지 않으시다 할지라도,
(스스로 본인이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현실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대등할 수가 없다.
서로 얼굴을 마주대하며, 편안하게 어울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창조주-피조물'의 관계가 명확하다면.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관계를 명확히 인식한다면 말이다.
 
 
8.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대면하며 어울릴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이런 사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무지(無知, 깨치지 못하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어느 지점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았기 때문에 허물이 없이 명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9.
선악과를 먹으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에 눈이 뜨면서
어쩌면 이러한 '창조주-피조물'의 관계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수 있다.
 
자신이 벗은 것을 보게 되는 순간은,
어쩌면 절대자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해지는 피조물의 상태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스스럼 없었던 이전 관계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두려워했고, 절대자의 눈을 피하여 숨게 된 것일지 모른다. 
 
 
10.
벗은 것을 보는 것(혹은, 선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가 문제가 되었다.
 
 
11.
바로, 하나님을 피하게 된 것.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있고, 어울리고, 동행하고, 조화를 이루고, 교제하고, 관계하고 싶으신데...
우리가 '우리 죄를 바라봄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피하고, 숨고, 격리하고 있는 것이다.
 
 
12.
벗은 것은 어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어떤 죄를 짓느냐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심판자, 정죄자가 되어 버리면 결코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원죄의 본질은 어쩌면...
 
숨는 것에 있다.
도망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을 피하는 것에 있다.
 
 
13. 
따라서, 반대로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숨지 않고 고백하는것,
도망치지 말고 돌아가는 것,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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