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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 & 유학 & 문화 : 자녀교육/독일교육 & 자녀교육

[독일교육 & 유아교육 & 홈스쿨링] #05.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 타기! (feat. '잘' 넘어져라!)

by 바후르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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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내다본 뒷마당. 하얗게 핀 체리나무의 꽃들로 한국과 비엿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여리게 빛나는 찰나의 봄이 되었다.

 

여전히 차가운 날 선 바람이 이따금씩 불어왔지만, 온 대기를 너끈히 데우고도 남는 노곤한 태양볕이 온종일 내리쬤다. 4월. 이젠 어느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봄, 봄이다.

 

달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계절을 확신하는 게으른 사람들과 달리, 어떻게 알았는지 숲과 들의 꽃들과 나무는 벌써부터 부지런히 잎망울을 틔우고, 꽃망울을 틔우고 온 세상을 예쁘게도 치장해 놓았더라. 알록달록, 노랗고, 하얗고, 분홍에, 연보라에, 각양각색의 점들이 모여들어 연하디 고운 봄 세상이 지천에 완연하다.

 


 

'앎'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 '삶의 만족'을 주기도 한다.

 

이웃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부리나케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 여름이면 독일 초등학생들은 자전거 여행(Radtour)을 다닌다고. 첫째 자전거를 어서 구입해야 한다고, 매일 아침 나를 볼 때마다 어찌 그리 강하게 이야기하시던지. 

 

'우리 아이들은 아직 자전거를 못 타는데.'

미처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저렴하게 나온 자전거를 연습용 삼아 얼른 구매해서 가지고 왔다.

 

매끈한 새 것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자기 자전거가 생겼다니, 얼마나 뿌듯해하던지.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이처럼 행복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보는 눈이 높아지고, 비교 기준이 다양해진 어른들의 눈엔 마뜩잖고 부족한 자전거인데, 아이들에겐 기쁨이 차고 넘치는 선물이 되니 말이다.

 

매일 아침 산책길. 어떤 이들이 강아지와 함께 집을 나서듯,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탈 줄도 모르는 자전거를 한 손에 이끌고 나서기 시작했다.

 

두 대는 이웃들에게 받았고, 나머지 두 대는 모두 5만 원에 중고장터에서 직접 구입했다. 순식간에 자전거 부자가 되어버렸다.

 

 


 

보조 바퀴의 도움을 받아 빨리 달려가는 것?
스스로 균형 잡아가며 느리게 걸어가는 것?

 

그러고 보니 독일의 아이들 자전거에는 보조 바퀴를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자동차에 '자동변속기'가 필수인 것처럼, 아이들 자전거에는 으레 '보조바퀴'가 달려있곤 했는데, 여기에선 그런 어린이 자전거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독일에선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기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페달 없이 발로 타는 자전거(Laufrad)'을 타는 어린이들이 많다. 자전거에 걸터앉아서 뛰고 걸노라면, 가끔씩, 몇 초 동안은 두 발을 모두 뗀 채로 중심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독일의 '걷는 자전거(Laufrad)'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전거의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경험이 몸에 쌓인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면, 보조바퀴 없이도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셋째가 요즘 푹 빠져있는 '걷는 자전거(Laufrad)'

 

셋째가 뛰고 걸으며 자전거(Laufrad)를 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팽'하고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아, 우리 교육은 어쩌면 좋은 보조바퀴를 찾으려고 애썼던 것이구나.'

 

우리 부모들은, 혹은 선생님들은, 우리네 아이들이 가능한 '꽃길'만 걸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가능한 한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실패하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나와 비슷한 우리 자녀들은 가능한 한 나와 비슷한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문에, 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아이들이 겪을 법한 장애를 찾아 제거하려고 애쓴다. 학군, 학교, 학원, 과외, 유학처럼 최대한 좋은 '보조바퀴'도 기를 쓰고 찾아서 아이들의 곁에 단단히 달아준다. 덕분에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고 꼿꼿이 서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부모는 그 모습을 보고 아마 뿌듯해할 것이다.

 

'쌩쌩' 신이 나게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가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은 그들을 '서고 달리게'한 능력이 실은 '아이들의 능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이 넘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아 준 것은 '아이들의 균형감각'이 아니라 부모가 찾아준 '든든한 보조바퀴'이다.

 

혹, 이후 보조바퀴가 낡아 자전거가 쓰러지게 된다면, 그때엔 더 튼튼한 보조바퀴를 찾아서 달아주는 게 좋은 방법일까? 아니면, 스스로 균형감각을 가지도록 해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까?

 

하도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으니 허리가 아파서 좀 쉬어야겠다 했다. 그새를 참을 수 없었던 자매의 ' 열정'은 서로 뒤를 잡아주는 따뜻한 협동의 그림을 '실수로' 연출해버렸다.

 

 

아민아(둘째, 가명), 언니가 보니까 아빠가 손 놓더라. 
아빠, 손만 믿으면 절대로 안돼!

 

사실 교육이란 넘어지지 않는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안전하게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서서' 걷고 있지만, 실은 이 '걸음'을 우리 몸에 쌓기 위해서 우리는 대략 2,000번은 넘어지고 쓰러져야만 했다. 무수한 '쓰러짐'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일어섬'을 몸에 익힌 것이다. 복효근은 그의 시 <고전적인 자전거 타기>에서 이 땅의 아비들은 '넘어짐으로 익힌 균형감각'으로 살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구든 일어서기 위해선, 넘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험 교육'의 사상적인 기반을 마련했던 장 자크 루소는 '교육이란 습관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며 탄탄대로로 나아가는 것보다, 내 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습관들을 몸에 아로새기는 '실패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낫다. 그럼 습관들이 몸에 가득 쌓인 사람은 훗날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역경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설혹 넘어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잘' 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발전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지식이 충만해지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무수히도 많아졌다. 그것은 교육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우리가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하나뿐이다.

누가 나의 인생을, 내 자녀의 인생을, 그 끝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끝에 다 달아서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잘못되었으니 물러달라' 말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인생을 걸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리 자녀의 삶을 '그나마' 자기 목숨만큼 중요하게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은 부모이겠지만(이런 이유로 루소는 부모가 최고의 교사라고 말했다) 그런 부모 역시 자녀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정말로 전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누가 교육의 '이상'을 말하는가? 누가 교육의 '정답'을 말하는가? 누가 한 인생의 교육적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가?

 

나는 오늘도 이 질문들 앞에 서있다.

 

나라고 정답을 알겠는가? 내 자녀의 미래를, 아니 정작 나의 현재와 미래조차 나는 스스로 장담할 수 있는가? 

 

그저 내가 '지금 이 순간' 믿고, 확신한 바를 따라 걸어갈 뿐이다. 결국 내 '말'은 내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니까. 

 

볕이 따뜻하다. 나의 아버지가 삼십 년 전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셨듯, 오늘은 내가 아이들에게 그 아버지가 되었다. 나도, 너도 '넘어짐으로 일어서자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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