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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 성경 : 말씀 : 묵상/기독교 칼럼: 민경찬(예수원)

[민경찬 신앙칼럼] #03. 코로나 19, 한국교회에 대한 권면

by 바후르 202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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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질서를 파괴할 때 

질서에 대한 열망이 자유를 파괴할 것이다."
(윌 듀란트, 미국 철학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15)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죽음", 

"감염", 

"격리"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두려움>이라 하겠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원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형벌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죽음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무시하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보면,

현실은 사람들의 바람과 같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  

우리는 본능으로 이 죽음을 피하거나 이기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물론 이따금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들이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우리를 피해 가지 않습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결국 이것이 한평생입니다. 
수고와 슬픔뿐이고, 죄의 댓가입니다.

감염은 사실 옛날에는 흔한 것이었습니다.

역병이라고 하고,

괴질, 염병, 온역 따위로 다양하게 불렸고,

쉽게 우리말로 하면 돌림병이라고 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돌아가며 맞는다는 뜻입니다.

환경, 위생상태가 개선되고,

면역력을 증대할 수 있는 의료과학기술의 개발로

어느 정도 신체적 안전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 같지만

실은 '백신'으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축해놓은 방법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것이 백신을 무조건 불신하거나

또는 불신을 조장하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정부가, 그리고 권세자들이

백신 접종이 현재의 최선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다만 '현재의 우리'들은

돌림병을 쉽게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5~60년 전이었다면

돌림병은 우리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죽음이 정해진대로 가는 것이라면,

감염은 돌아가면서 맛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돌림병이라 말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어렸을 적 보았을
홍역, 볼거리, 천연두 같은 것들을  
지금 우리는 온세대가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는 젊기에 안 걸린다고 단정 짓거나

나는 걸려도 그것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
혹은 나는 늙었다고 더 큰 두려움과 낙심, 

또는 자포자기에 빠지는 것은

모두 옳지 못한 것들입니다.

성경말씀에 제 관점을 덧붙인다면

"먹든지 마시든지" 에다  

"죽든지 살든지"를 더해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위기에 상황에서도 

하나님 경외하는 경건함을 잃지 말아야 하며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주 예수님께서는 로마제국의 불의하고 부당한 판결에도 순응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배치되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서도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하여 (예를 들어, 빨갱이라 소리치며)

반란과 반역을 선동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했습니다.

"사람에게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 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13~14)

코로나 19로 각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정부(권세자들의) 조치는 합당한 것으로

우리는 그러한 조치에 따르고 협력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빨갱이라 외치고 선동하는 행위들은

경계심의 범주를 넘어 양심에 화인 맞은 것들이며,

분별력을 잃은 이성의 마비가 편견의 도가 지나치게 만들어

미쳐버린 자기 눈의 혈관이 터져

도리어 그들을 빨갛게 보이게 만든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격리"입니다.

 

정부의 합당한 조치를 인정하지만,
우리가 요구받는 격리와

권고받고 있는 말하기의 자제는
우리의 일상과 자연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

거북하고 불편함을 겪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됨과 같은 연합과 일치,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움과 같은 성도 본연의 임무에

위해를 당하는 듯한 걱정스러움과

그로 인한 경계심을 가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의 중요한 주제인 코이노니아가
(서로 책임짐, 하나가 됨, 우리가 됨)

사랑의 구체적 행위인 코이노니아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일부의 반발과 저항도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며 어쩌면 그들은

과거 군에서 훈련받았던 폭동진압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무리를 쪼개고 쪼개서 세력을 약화시키는 물리적인 조치처럼  

우리 교회를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학적 조치로 "격리"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분리" 일 테니 말입니다. 

 

본의  아니게  

모이기를 폐하는 분리, 

나눔을 제한하는  차단,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 말고도 

마스크로 상징되는 "입마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억제시키고  제재하는 것으로  

마땅히 싫은 것이고,

귀찮은 것이고,

내가 아닌 남이 당해도 끔찍한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치 자유롭게 뛰놀던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하여 제재시키고 

억제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느낌은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아닌 외부환경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이와 같은 것뿐입니다.

모임 대신 분리가
섬김과 나눔 대신 차단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내고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선, 그동안 주님을 섬긴다는 명분 아래  

우리의 과열된 행위들이 있지는 않았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거품을 거둬내고 진정한 성령의 생수를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재정비해야겠습니다.  

기존의 틀과 습관에서 벗어나

새포주를 새부대에 담는 것처럼 
여러 해를 거쳐오면서 우리가 지켜왔던

규칙과 습관이라는  낡은 가죽부대를 다시 살펴보고 조사해서  

새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있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사도나 직임자들 위주로 운영되거나,

조직이나 돈의 힘을 중심으로 운영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인데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돈인지, 

정욕인지, 

(자식에게 물려주는) 명성인지,

탐욕인지,

깨어 분별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 성령)으로 되느니라" 하셨으니
성령을 앞선 사람들과  

성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때에 돌이켜야만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현재의 상황은

우리 교회에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더 놀랍고 다양한  방법으로 

섬기고 나눌 수 있으며
그동안 몸은 모여있어도  

마음과 영이 나뉘어

도리어 참된 예배가 되지 않은 것에서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교회 안에 만연했던 변종 고르반과  

오랜 전통의 외식에서 이젠 깨어나야 합니다.

안심하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코로나 19의 돌림병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의 사랑을 거절하며  

진리를 위하지 않는

우리의 배신 행위가 두려울 뿐입니다.

 

 

2021.1.26. 민경찬 

 

 


※ 위 칼럼은 민경찬 형제님께 받은 글을 허락받아 옮겨 적었습니다. 

 

 

 민경찬 형제님은...? 

 

1985년, 예수원 설립자 故대천덕 신부님의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읽은 후, 기도에 동참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길로 강원도 태백으로 떠났다.

 

이후 예수원에서 훈련을 받고, 오랜 시간 예수원에서 한국과 한국교회를 위한 '중보자'로서 생활했다. 예수원에서 룻 자매님을 만나 다섯 자녀를 두었다. '노동과 기도'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믿음의 형제들에게 직접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금은 예수원을 떠나 여러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건강한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지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글들은 오랜 성경의 연구, 깊은 묵상과 기도,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순수한 믿음을 지키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현대의 신자와 가정에 깊은 울림을 준다.     

 

 

2016년 6월. 공동체 교회모델 연수 당시 예수원을 대표해 강의자로 참석한 민경찬 형제님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kj7851/220828692462)

 

 

[민경찬 형제님 관련 기사]

 

민경찬 형제 인터뷰: 경향신문(khan.co.kr) / 2005.08

민경찬 형제 공동체 교회모델 강사: 뉴스앤조이(newsnjoy.or.kr) / 2016.06

관련연수 참가집기사: 아름다운 마을 69호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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