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 : 소식지 : 편지/소식지 & 기도요청

[추모] 찬란했던 나의 봄꽃(春花)

by 바후르 2022. 3. 11.
반응형

 

 

늦은 울음이 터진다.

할머니의 소천.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마음도 잠잠했다.

편한 곳에 가셔 다행이다 생각했다.

 

늦은 울음이 터져 나온다.

멈출 줄을 모른다.

이제야 비로소

내 귀한 어른의 상실을 실감하는 모양이다.

 


 

독일에 온 지 2년 반 정도가 지났다.

 

비록 몸은 약해지셨었더라도

멀쩡하셨던 두 어르신이

별안 간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셨다.

 

이제 그 분들을 나는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다.

 

 

몰래 바지춤 쌈짓돈을 꺼내

손주들의 손에 꼭 쥐어주시던 할머니.

 

늘 고봉밥을 대야 크기의 국 그릇에 말아

두 그릇, 세 그릇 먹이시던 모습.

 

텃밭에서 나물을 캔 뒤,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수를 마셨던 일.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점에서 함께 외식했던 것.

 

 

 

명절마다 양껏 차려주셨던 고기전과 감주.

 

며느리, 손주들 힘든다며,

큰집에서 분가한 뒤로는 

펜션을 잡아 가족 여행을 떠났던 신세대 할머니.

 

베란다 문 앞에서 자동차가 떠나가기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

 

끝도 없이 생각나는 할머니의 모습들을 뒤로하고

내 할머니는 그렇게 본향으로 떠나셨다.

 

 

 


 

작년 9월 할아버지께서 천국으로 가시고 2~3개월이 지났을 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위독해지셨다.

 

그 고비를 지나고,

남은 자녀손들과 몇 번의 눈 인사를 더 나눈 뒤,

마지막까지 한 없는 사랑을 다 쏟아 주신 뒤,

그 분은 그렇게 떠나셨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미련 없이 떠나셨단다.

 

어머니가 할머니 귀에 대고

"감사해요, 엄마. 엄마 덕분에 우리 다섯 남매 잘 컸어요.

우리 걱정 마시고, 편안히 가세요."

라고 기도하자

눈을 뜨고 몇 번을 말씀하시려 하셨지만

힘이 없어 채 눈을 뜨지 못하고, 말씀을 이어갈 수 없으셨단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나도 고맙다.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우리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 내 먼저 가 있으마."

 

할머니는 이 말씀을 하고 싶으셨다고 생각한다.

내 할머니는 그런 분이시니까.

용감하고 담대한 어른.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 찬란한 내 봄꽃. 

 


 

할머니의 부고를 받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는 편안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대범아, 날이 너무 좋아.

밝고 따뜻해. 천사가 날개 피기 딱 좋은 날씨야."

 

"예전에, 할머니가 잠시 병원에서 나오셨을 때,

내가 '엄마, 아부지 보러갈래?' 라고 물어봤었거든.

그 때 할머니가 '아니, 날 좀 따뜻해지면, 봄에 가볼게.' 하셨어.

오늘이 딱 그런 날이야. 따뜻하고 밝은 봄 날."

 

 


 

내 어른들이 떠나가시는 게 좀 슬프다.

주어진 삶의 과제에 매여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한 번에 터져 나온다.

 

사랑하는 내 어른들.

내가 그 분들을 다시 만날 때,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자라있기를,

조금은 덜 부끄럽기를,

조금은 더 자랑스러워지기를 소망한다.

 

사랑하는 내 할머니,

찬란한 나의 봄꽃을 추모하며...

 

 


 

 

 

https://bahur.tistory.com/68

 

[斷想] 나의 할머니께.

할머니. 전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의 할머니. 나의 할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지난날 저는 당신들께 재롱을 부리던 귀여운 어린아이였습니다.

bahur.tistory.com

https://bahur.tistory.com/505

 

사랑하는 내 할머니...

일찍 아버님이 소천하셨기에, 외가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감당하셔야 했던 어머니의 자리는 할머니께서 맡아주셨다. 할머니는 내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주시는 분이셨다. 무조건

bahur.tistory.com

https://bahur.tistory.com/500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 (故 권오복)

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께서 85세의 일기로 어제 새벽 소천하셨다. 그러나 독일과 한국 시간이 서로 반대였기에, 나는 당시 막내이모로부터 온 임종 전화를 받지 못했다. 새벽녘, 여느때와 다름

bahur.tistory.com

 

반응형